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04) 1956년, 이스탄불 거리의 문서작성 대행인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 말기까지 터키의 식자율(literacy rate)은 8.61%에 불과했다. 이는 여성인구로 가면 더욱 낮아져서 3.67%까지 급락했다. 당시 여성 100명 중 불과 3~4명 정도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기에 법원이나 관공서 근처에는 공식문서의 작성을 대행해 주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1

1956년, 터키 수도 이스탄불의 거리에서 한 남자가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옆에 앉아있는 차도르를 입은 여성은 남성이 작성 중인 문서를 의뢰한 고객이다.
사진은 여러 역사적 순간을 남긴 영국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리스(David Lees, 1916~2004)가 촬영하였다.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 말기까지 터키의 식자율(literacy rate)은 8.61%에 불과했다. 이는 여성인구로 가면 더욱 낮아져서 3.67%까지 급락했다. 당시 여성 100명 중 불과 3~4명 정도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기에 법원이나 관공서 근처에는 공식문서의 작성을 대행해 주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것이 터키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가 터키어에 맞지 않고 배우기도 어려운 아랍문자를 개혁하는 정책을 실시한 이유였다. 1929년 1월 1일부터 공식문자를 라틴문자로 바꾼 이후 1941년이 되자 식자율은 27%로 급증했고, 2018년에는 95.91%로 10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 말기까지 터키의 식자율(literacy rate)은 8.61%에 불과했다. 이는 여성인구로 가면 더욱 낮아져서 3.67%까지 급락했다. 당시 여성 100명 중 불과 3~4명 정도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기에 법원이나 관공서 근처에는 공식문서의 작성을 대행해 주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3
▲ 바뀐 터키어 문자를 읽어보는 남자(1929년)


사진 속 대행업자는 거리에서 일하고 있지만 말끔한 정장 차림과 함께 시계,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멋을 내고 있다. 이미 1950년대 중반이지만 새로운 교육을 받지 못한 노년층과 여성을 대상으로는 여전히 상당한 소득을 올릴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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