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08) 1993년, 아르메니아의 레닌 동상에 앉아있는 ‘셰어(Cher)’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겸 가수 셰어(Cher)가 1993년, 아르메니아를 방문해 머리가 사라진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의 동상에 앉아 있다. 사진은 아르메니아 현지 사진작가 므히타르 카차트리안(Mkhitar Khachatryan)이 촬영하였다.
셰어의 본명은 셰릴린 사키시안(Cherilyn Sarkisian)으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다. 셰어의 부친과 그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인 게오르기 사키시안(George Sarkisian)이 아르메니아 대학살(Armenian Genocide)의 생존자였다. 이런 배경을 셰어도 평소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모국을 찾아 역사적인 기념사진을 남겼다.
당시 아르메니아는 소련의 해체 직전인 1991년 9월 21일에 독립을 선언하였고, 소련의 해체와 함께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은 신생 독립국이었다.
▲ 사진 속 레닌 동상이 원래 세워져있던 곳은 수도 예레반(Yerevan)의 공화국 광장(Հանրապետության հրապարակ / Republic Square)으로, 독립하기 전에는 ‘레닌 광장(Լենինի հրապարակ / Lenin Square)’으로 불리며 공산주의 체제를 과시하는 열병식과 행사가 열리던 곳이었다.
▲ 비영리 구호단체인 유엔아르메니아기금의 후원을 받은 셰어는 1993년 4월 24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DC-8 화물기를 타고 아르메니아를 방문했다. 당시 TV에 친숙하지 않았던 아르메니아인들은 ‘스타‘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그녀는 미국에서 엄청나게 성공한 아르메니아 출신의 여성으로 알려졌다.
▲ 세계 최초의 성당으로 여겨지는 에치미아진 대성당(Etchmiadzin Cathedral)을 방문한 셰어. 조각가의 망치를 빼앗아 자신이 다루는 돌발행동을 하는 등 셰어는 전통적인 아르메니아 여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 셰어가 동행한 연인 롭 카밀레티(Rob Camilletti)와 머물렀던 호텔 아르메니아(Hotel Aremenia)의 디럭스 스위트 룸. 당시 아르메니아 전역은 하루에 몇 시간만 전기가 공급되었는데, 셰어 때문에 호텔 아르메니아에는 평소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전기와 온수가 공급되었다.
▲ 아르메니아 어린이를 만나고 있는 셰어. 당시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셰어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녀의 당당한 모습과 화려한 패션은 춥고 어두운 아르메니아에 서방세계로부터 들어오는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고아원과 사회단체에 싣고 간 45톤의 의료용품과, 책, 인쇄장비, 장난감을 전달했다.
▲아르메니아의 고아원을 방문한 셰어.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바닥에 앉은 그녀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며 바비인형 등의 장난감을 선물했는데, 새 장난감을 가져본 적이 없는 고아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셰어는 항상 바비인형을 ‘금발의 멍청한 여성‘이라며 혐오했는데, 이때는 인형을 들고 “이제 보니 꽤 쓸모가 있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은 예레반 공화국 광장에 레닌 동상이 세워져 있던 시절과 철거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 동상이 건재하던 시절의 모습. 레닌 동상은 7m(기단 포함 18m)의 높이로 아르메니아계 조각가 세르게이 메르쿠로프(Sergey Merkurov, 1881~1952)가 아르메니아의 전통에 따라 구리 단조공법으로 제작하였다.
▲ 예레반의 레닌 동상은 1940년 11월 24일, 아르메니아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Socialist Soviet Republic of Armenia) 정권수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설치되었으며 11월 29일에 제막식을 가졌다. 소련시대에 이 동상은 수많은 레닌 동상들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 소련 시대의 예레반 ‘공화국 광장‘ 모습. 당시에는 ‘레닌 광장‘이었다.
▲ 측면에서 본 레닌 동상. 오른쪽으로 셰어가 방문했을 당시에 머물렀던 호텔 아르메니아(Hotel Aremenia)가 보인다. 현재는 아르메니아 메리어트 호텔 예레반(Armenia Marriott Hotel Yerevan)으로 운영되고 있다.
▲ 레닌 광장에서는 1년에 두 차례(노동절, 볼셰비키 혁명 기념일)에 퍼레이드 행사가 열렸다.
▲ 1991년 4월 13일, 동상의 철거 소식을 듣고 군중들이 모여있다. 앞서 1991년 3월 28일에 예레반 시의회는 레닌 동상의 철거를 놓고 찬반투표를 하였고, 반대 2표 / 기권 4표 외에는 찬성표가 몰리면서 이날 오후 5시에 철거가 결정되었다.
▲ 머리가 분리되고 있는 레닌 동상. 광장에서는 폭죽이 터졌고, 레닌의 머리에서는 참수된 머리에서 흐르는 피처럼 고여있던 빗물이 쏟아졌다.
▲ 동상의 몸통 부분이 기단에서 해체되고 있다. 사람들은 레닌의 몰락을 축하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 트럭에 실린 레닌 동상의 몸통. 경찰은 일부 사람들의 돌을 던지거나 소변을 보려는 행동으로부터 동상을 보호해야 했다. 동상을 실은 트럭은 군중들의 환호 속에 광장을 여러 차례 돌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 51년만에 동상이 사라진 기단을 바라보는 군중들. 동상은 철거되었지만 광택으로 빛나는 석영재질의 기단은 역사적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동안 남아있었다. 하지만 1996년 7월 20일, 아르메니아 정부는 ‘광장과 조화롭지 않다’라며 철거를 결정하였다. 사회단체와 건축가들의 반대로 인해 철거작업이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얼마 후 재개되어 철거가 완료되었고, 기단의 구조물은 각각 번호가 매겨져 보관되고 있다.
▲ 동상의 몸통은 예레반 국립미술관(Հայաստանի ազգային պատկերասրահ / National Gallery of Armenia) 뒤뜰에 방치되었다. 셰어가 사진을 찍은 곳도 이곳이었다.
▲ 현재도 같은 장소에 있는 레닌 동상. 여배우이자 예레반 국립미술관의 조각부장인 마리암 다브티안(Մարիամ Դավթյան)이 동상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예레반 국립미술관의 창고에 있는 레닌 동상의 머리 부분
▲ 레닌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2000년 12월 31일에 1700개의 조명이 설치된 24m의 십자가가 임시로 들어섰다. 이는 아르메니아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가 된 1700주년인 2001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2004년 2월에는 광고를 위한 스크린이 설치되었다가 2006년에 철거되는 등 현재까지도 레닌 동상의 대체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