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일본을 방문한 모나리자(Mona Lisa)

1973년에 파리를 공식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1918~1993) 총리는 일본학(日本學, Japanese studies) 진흥을 위해 프랑스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천명했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양국 간 문화교류의 의미를 담아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11~1974) 프랑스 대통령 역시 루브르 박물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도쿄 임대'를 결정했다. 1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에 소장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대표작 ‘모나리자(Mona Lisa)’를 반출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의 허가가 필요하다.

 

1973년에 파리를 공식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1918~1993) 총리는 일본학(日本學, Japanese studies) 진흥을 위해 프랑스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천명했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양국 간 문화교류의 의미를 담아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11~1974) 프랑스 대통령 역시 루브르 박물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도쿄 임대’를 결정했다.

 

1973년에 파리를 공식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1918~1993) 총리는 일본학(日本學, Japanese studies) 진흥을 위해 프랑스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천명했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양국 간 문화교류의 의미를 담아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11~1974) 프랑스 대통령 역시 루브르 박물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도쿄 임대'를 결정했다. 3
▲ 다나카 가쿠에이(좌), 조르주 퐁피두(우)


쥘 작전(Operation Jules)’이라 명명된 모나리자 일본 공수는 1974년 4월 16일, 에어프랑스 1626편에 실리면서 시작되었다. 작전에 사용된 보잉 707 기종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직원들이 함께 탑승했고, 모나리자가 급변하는 온도에 손상되지 않도록 해줄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일부 좌석까지 들어낼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모나리자는 국가 원수들이 받는 공식적인 환영행사를 받았다. 또한 거리와 상점의 창문에는 모나리자의 포스터가 붙어서 마치 살아있는 슈퍼스타가 찾아온듯 했다.

 

1974년 4월 20일부터 6월 10일까지 도쿄국립근대미술관(東京国立近代美術館)에서 열린 모나리자 특별전시회는 총 150만 명이 관람했다. 전시장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몸싸움을 일으키며 줄을 섰고, 관람객은 모나리자 앞에서 10초간만 서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1973년에 파리를 공식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1918~1993) 총리는 일본학(日本學, Japanese studies) 진흥을 위해 프랑스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천명했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양국 간 문화교류의 의미를 담아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11~1974) 프랑스 대통령 역시 루브르 박물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도쿄 임대'를 결정했다. 5
▲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사진: Bob Wickley】


모나리자 일본 전시회는 사회적 차별에 대한 논란도 낳았다.

 

전시회에 앞서 일본 문화청(文化庁)은 “혼잡이 예상되니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장애인과 노인, 아기들은 관람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라는 담화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분노한 장애인단체가 “장애인 차별을 멈추라”는 이유로 박물관 밖에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후 박물관은 “동행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이 따로 모나리자를 관람할 수 있는 「장애인의 날(身障者デー)을 정하겠다”라고 했지만, 장애인단체로부터 “하루 동안의 특별 취급은 더 큰 차별”이라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은 규정을 수정하지 않았고, 결국 개관식 첫날 요네즈 토모코(米津知子)라는 장애인 여성이 모나리자에 붉은 스프레이를 뿌리며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다행히 스프레이는 모나리자에는 닿지 않았고, 아래쪽의 유리 케이스를 붉게 물들였다. 재판에 넘겨진 요네즈 토모코는 1975년 12월에 벌금 3000엔을 선고받았다.

 

1973년에 파리를 공식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1918~1993) 총리는 일본학(日本學, Japanese studies) 진흥을 위해 프랑스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천명했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양국 간 문화교류의 의미를 담아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11~1974) 프랑스 대통령 역시 루브르 박물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도쿄 임대'를 결정했다. 7
▲ 시위를 벌이는 요네즈 토모코(米津知子)【사진: Michiko Matsumoto】


엄청난 열기와 논란 속에 일본에서의 전시회를 마친 모나리자는 1974년 6월 21일부터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The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에서 두 달간 전시회를 갖고 프랑스로 복귀했다.

 

1973년에 파리를 공식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1918~1993) 총리는 일본학(日本學, Japanese studies) 진흥을 위해 프랑스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천명했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양국 간 문화교류의 의미를 담아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11~1974) 프랑스 대통령 역시 루브르 박물관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도쿄 임대'를 결정했다. 9
▲ 2005년부터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는 모나리자


그런데 모나리자는 이런 해외순방이 달갑지 않았던 것일까.

 

마치 그녀가 내린 저주처럼 이 전시회를 기획했던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은 모나리자가 파리를 떠나기 2주 전인 1974년 4월 2일에 임기 중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충격을 주었다.

 

또 다른 당사자인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도 모나리자 전시회가 폐막된 지 5개월 후에 불법적인 토지거래에 비서이자 정부인 사토 아키코(佐藤昭子)의 이름을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었고, 미국 상원의 조사에서 전일본공수(All Nippon Airways)가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Lockheed L-1011 Tristar) 여객기 21대를 구매하도록 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나며 총리직에서 불명예스럽게 사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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