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미국 텍사스에서 유행한 ‘열차 충돌 서커스’
1896년 9월 15일, 미저리-캔자스-텍사스 철도회사(Missouri-Kansas-Texas Railroad, 이하 MKT)에서 기획한 ‘열차 충돌 서커스‘에서 준비된 2대의 열차가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이 이벤트는 MKT의 직원이었던 윌리엄 조지 크러시(William George Crush)가 구상한 아이디어로, 말 그대로 열차 충돌사고를 서커스처럼 대중 앞에서 재현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황당무계한 아이디어는 크러시가 처음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에 앞서 1896년 5월 30일에 오하이오주 벅아이공원(Buckeye Park)에서 이미 개장일에 맞추어 열차 충돌 서커스가 성공리에 시행되면서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린 상태였다.
이런 홍보효과를 본 MKT의 임원들은 이 아이디어를 전적으로 지지했다. 여기에 더해 크러시는 열차 충돌 서커스는 ‘무료‘로 공개하는 대신, 텍사스 전역에서 이벤트 현장까지 올 수 있는 열차 티켓을 3.5달러(2024년 가치 130.9달러)에 판매하는 ‘끼워팔기‘ 상술을 발휘했다.
▲ 윌리엄 조지 크러시(William George Crush, 1865~1943)
당시는 지금과 달리 볼거리가 매우 부족한 시대였다. MKT의 열차 충돌 서커스에는 최대 25,000명의 관객을 예상하는 것을 훌쩍 넘어 40,000명의 관객이 몰려들었으며 현장까지 오는 30대의 특별열차가 매진될 정도였다.
주최 측은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거쳤고 안전장치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 이벤트는 완벽하게 안전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충돌이 발생했을 때 100%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현대에도 감히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 충돌에 사용된 열차
1896년 9월 15일 오후 5시경, 준비된 2대의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커스는 원래 4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모여든 군중들을 경찰이 안전거리인 180m 밖까지 몰아내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지연되었다.
선로 양 끝까지 간 열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와 시속 72km의 속도로 충돌하였고, 큰 폭발과 함께 수많은 파편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열차의 바퀴를 비롯해 다양한 철조각과 부품들이었다.
▲ 열차가 충돌하는 순간
그제야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돌아서서 도망쳤지만, 발보다 훨씬 빠른 파편에 맞아 2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사진을 촬영한 조 딘(Joe Deane)은 날아온 볼트에 맞아 한쪽 눈을 잃었다.
각 6량 길이의 열차가 강하게 부딪치면서 남은 것은 1량의 객차 뿐이었고, 처참한 현장에 남은 잔해는 고철과 타고남은 목재뿐이었다.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MKT는 인지도를 높이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피해자들에게는 평생 무료열차권과 현금을 주면서 무마했다.
▲ 조 딘(Joe Deane)이 촬영한 열차가 충돌하기 직전의 모습. 그는 눈을 잃은 보상금으로 1만 달러를 받았다.
이런 큰 성공 덕분에 한동안 열차 충돌 서커스는 마치 현대의 FIFA 월드컵이나 콘서트처럼 큰 인기를 끌었으나, 경제대공황이 닥치면서 주머니 사정이 곤궁해진 미국인들이 돈을 아끼면서 사라졌고, 더 재미있고 안전한 볼거리들이 생겨나면서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다.
▲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파손된 열차를 살펴보는 사람들
지금 보면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과 호기심을 노린 황당한 이벤트였지만 1976년 텍사스 역사위원회(Texas Historical Commission)는 당시 이벤트가 있었던 곳 근처에 기념 표지판을 세우면서 역사의 한 장면을 기념하고 있다.
▲ 열차 충돌 서커스 인근에 세워진 기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