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25) 1870년대, ‘생매장’당하는 페르시아의 살인범
현대 이란의 옛 왕조인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 1794~1925)시대에는 다양한 방식의 형벌이 가해졌다.
특히 살인자가 죄를 자백하거나 증거가 확실하면 투석형, 대포처형 또는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아래의 사진과 같이 ‘생매장‘을 당하였다.
생매장을 당하는 사형수들은 머리만 흙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목마르고 굶주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최대한 천천히 가해지는 처벌은 살인자들에게는 최고의 형벌이라고 생각되었으며, 이를 공개적으로 바라보는 주민들에게도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후 근대에 가까워지면서 가장 흔한 처형 방식은 교수형이 되었다.
일례로 1896년 5월 1일, 페르시아의 왕 나스르 알 딘 샤(Naser al-Din Shah, 1831~1896)를 암살한 미르자 레자 케르마니(Mirza Reza Kermani)는 3개월 후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의 아들은 노예가 되었다.
▲ 체포된 미르자 레자 케르마니(Mirza Reza Kermani)
당시 그가 처형당하는 순간이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 사진들은 카자르 왕조 시대에 테헤란에서 사진관을 열고 활동한 아르메니아-조지아계 이란인 사진작가 앙투안 세브루긴(Antoin Sevruguin, 1851~1933)이 촬영하였다.
▲ 1896년 8월 11일, 교수형을 당하는 미르자 레자 케르마니(Mirza Reza Kerm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