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최고의 꿀알바(?), 수영 경기장 인명구조요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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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쓸모없는 직업‘, ‘올림픽 최고의 꿀알바‘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떠도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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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수영선수가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림픽 수영 챔피언이 물에 빠진 날

 

1948 런던 올림픽에서 두 개의 올림픽 메달을 따냈지만 세 번째 메달 도전 중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했던 그레타 안데르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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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타 안데르센(Greta Andersen, 1927~2023)


배경

16살 때 수영을 시작한 안데르센은 그 당시만 해도 수영에 대한 사랑과 체조에 대한 열정 두 가지를 모두 쫓았습니다.

 

그러나, 안데르센이 남다른 실력을 보여 준 것은 물 속이었습니다. 첫 출전한 국제 대회인 1947 유럽 선수권에서 안데르센은 4x100m 계영 금메달과 100m 자유형 은메달을 따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1948 런던 올림픽이 시작될 시점에서 안데르센은 이미 꼭 지켜봐야 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었습니다.

 

결선

1948 런던 올림픽에서 안데르센은 사람들의 기대로 인한 큰 부담감을 안고 풀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물에 들어가자 마자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 냈고, 100m 자유형 금메달에 이어 4x400m 계영에서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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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 런던올림픽 수영 여자 자유형 100m 금메달을 딴 안데르센이 국제수영연맹 르네 드 라에베(Rene de Raeve)회장의 축하를 받고 있다.


두 종목에서 이미 최고의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400m 조별 예선 3조 경기를 앞둔 안데르센은 당연히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안데르센 본인은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죠: “400m에서도 우승할 것이라 낙관했습니다. 지난 2년간 세계 최고 기록을 냈고, 아무도 저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확신했어요.”

 

그러나, 그 생각은 앞으로 일어날 현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400m 예선일은 안데르센의 생리 예정일과 겹쳤기 때문에 안데르센은 대표팀 주치의를 통해 생리를 늦추는 주사를 맞게 됩니다.

 

“수영하기 전까지는 몸 상태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다리와 복부가 마비되는 느낌이 났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이후는 기억이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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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 런던올림픽 여자 자유형 400m 3차 예선 경기 중 실신한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물속에서 기절했고, 익사의 위험까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헝가리 대표팀의 수구 선수를 포함해 다른 선수들이 이상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구하러 경기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이후

이런 일을 겪었지만, 안데르센은 수영 선수 생활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1948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2년 후, 안데르센은 유럽 선수권에서 세 개의 메달을 따냅니다.

 

하지만 헬싱키에서 열린 다음 올림픽에서 불운은 다시 찾아옵니다. 안데르센은 세 종목에 출전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받은 다리 수술 때문에 최상의 실력을 내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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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 헬싱키올림픽에서 경기하는 안데르센 【사진: Walther Månsson】


헬싱키 올림픽이 끝난 뒤 미국으로 이주한 안데르센은 마라톤 수영으로 종목을 변경했고, 다시 한 번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1957년부터 1965년의 기간동안 영국 해협을 6번 헤엄쳐서 건넌 최초의 여성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지금까지도 영국 해협 횡단 여자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 – 잉글랜드 구간(11시간 1분), 잉글랜드 – 프랑스 구간(13시간 10분)

 

안데르센의 물에 대한 사랑은 은퇴 후에도 계속됩니다. 1960년에는 캘리포니아에 그레타 안데르센 수영 학교를 세웠죠.

 

1969년, 안데르센은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웹사이트는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한 여성 수영 선수로서 그녀가 거둔 성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데르센은 경주에서 언제나 대부분의 남자들보다 빨랐고, 모든 남자들보다 빨랐던 경주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레타 안데르센은 처음으로 수영계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게 만든 인물입니다. ‘만약 마라톤 수영에서 여자 선수가 상위권 남자 선수들과 경쟁을 펼칠 수 있다면, 아마추어 수영에서 인기있는 중장거리 종목에서도 여성이 남성만큼 빨리 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안데르센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물 속에서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녀도 1948 런던 올림픽에서 자신을 익사할 뻔하게 만든 그 약물이 무엇이었는지, 그에 대한 답은 결국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출처: olymp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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