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일본전 패배에 분노한 러시아 응원단의 폭동
2002 FIFA 한일월드컵 H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튀니지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둔 러시아는 이미 토너먼트행 9부 능선을 넘어선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다음 경기는 비록 개최국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수 아래로 평가되었던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었던 것이다.
2002년 6월 9일, 요코하마 국제 종합경기장(현 닛산 스타디움)에 입성한 대표팀을 먼 거리에서나마 응원하기 위해 러시아 응원단도 모스크바 마네즈나야 광장(Manezhnaya Square)에 대거 모여들었다.
▲ 승리를 확신하는 모스크바의 거리응원단
모스크바 당국은 최초 1500명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무려 8000명 이상이 집결하며 현장은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흔히 축구 A매치를 ‘전쟁‘에 비유하는데, 러시아 팬들 역시 이 경기를 ‘제2차 러일전쟁‘이라 칭하면서 기분 좋은 승전보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서 불만이 속속 터져 나오기 시작하던 와중에 후반 51분,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稲本潤一, 아스널)가 골을 터뜨리며 러시아에는 패배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 이나모토 준이치의 골에 환호하는 일본 선수들
올레그 로만체프(Oleg Romantsev) 감독은 교체 선수를 투입하며 전세를 뒤집으려고 시도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러시아의 패배로 종료되었다.
그러자 거리응원을 하던 마네즈나야 광장 어디선가 차가 폭발하고, 모스크바 시청과 체호프 예술극장(Chekhov Moscow Art Theatre)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상점 273곳의 유리창이 박살나는 폭동으로 이어졌다.
▲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물
폭동의 결과는 실로 참혹했다. 75명이 부상(중상 49명)을 당하고 1명이 사망하였으며, 경찰 차량 3대를 포함해 107대의 차량이 파손되었다. 참사를 일으킨 수백 명의 폭도들이 연행되었으나 이중 8명만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러시아 대표팀은 첫 경기를 이기고도 일본에 예상치 못한 패배를 하며 기세가 죽었는지 최종전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도 2:3으로 패배하였고, 결국 조 3위로 16강에 오르지 못하고 쓸쓸한 귀국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