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위장막으로 덮인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경무대(景武臺)’

'청와대 구본관(舊本館)'으로 불리던 경무대 건물은 창고로 사용되다가 김영삼(金泳三, 1929~2015) 대통령이 철거지시를 내리면서 1993년 10월 15일에 공사에 들어가 1993년 11월 17일에 작업을 완료하였고, 건물이 있던 자리는 조선시대의 수궁(守宮)터로 복원하였다. 철거된 건물 자재는 15톤 트럭 450대 분량이 나왔으며, 벽돌 한 장도 보존되지 않고 김포군 검단매립지에 버려졌다. 1

경무대
(景武臺)는 원래 일제시대 조선 총독관저로 지어진 건물로, 해방 이후에는 존 하지(John Reed Hodge, 1893~1963) 미 군정장관(軍政長官)의 관저로 사용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晚, 1875~1965)이 이곳을 공식적인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다. 위의 사진은 1957년에 촬영된 것으로, 위장막을 건물 전체에 덮어 관측을 어렵게 한 모습이다. 아마도 평상시의 모습은 아니고 전쟁이나 공습을 대비한 훈련 중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 구본관(舊本館)'으로 불리던 경무대 건물은 창고로 사용되다가 김영삼(金泳三, 1929~2015) 대통령이 철거지시를 내리면서 1993년 10월 15일에 공사에 들어가 1993년 11월 17일에 작업을 완료하였고, 건물이 있던 자리는 조선시대의 수궁(守宮)터로 복원하였다. 철거된 건물 자재는 15톤 트럭 450대 분량이 나왔으며, 벽돌 한 장도 보존되지 않고 김포군 검단매립지에 버려졌다. 3
▲ 평상시 경무대의 모습(1993.08.11)


제2대 윤보선(尹潽善, 1897~1990)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무대라는 이름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라는 이유로 1960년 12월에 청와대(靑瓦臺)로 개칭되었으며, 1991년 9월에는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였다.

 

‘청와대 구본관(舊本館)’으로 불리던 경무대 건물은 창고로 사용되다가 김영삼(金泳三, 1929~2015) 대통령이 철거지시를 내리면서 1993년 10월 15일에 공사에 들어가 1993년 11월 17일에 작업을 완료하였고, 건물이 있던 자리는 조선시대의 수궁(守宮)터로 복원하였다. 철거된 건물 자재는 15톤 트럭 450대 분량이 나왔으며, 벽돌 한 장도 보존되지 않고 김포군 검단매립지에 버려졌다.

 

'청와대 구본관(舊本館)'으로 불리던 경무대 건물은 창고로 사용되다가 김영삼(金泳三, 1929~2015) 대통령이 철거지시를 내리면서 1993년 10월 15일에 공사에 들어가 1993년 11월 17일에 작업을 완료하였고, 건물이 있던 자리는 조선시대의 수궁(守宮)터로 복원하였다. 철거된 건물 자재는 15톤 트럭 450대 분량이 나왔으며, 벽돌 한 장도 보존되지 않고 김포군 검단매립지에 버려졌다. 5
▲ 수궁터로 복원된 청와대 구본관(경무대) 자리


이후 2022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의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였고, 청와대는 공원화되어 현재는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청와대 구본관(舊本館)'으로 불리던 경무대 건물은 창고로 사용되다가 김영삼(金泳三, 1929~2015) 대통령이 철거지시를 내리면서 1993년 10월 15일에 공사에 들어가 1993년 11월 17일에 작업을 완료하였고, 건물이 있던 자리는 조선시대의 수궁(守宮)터로 복원하였다. 철거된 건물 자재는 15톤 트럭 450대 분량이 나왔으며, 벽돌 한 장도 보존되지 않고 김포군 검단매립지에 버려졌다. 7
▲ 청와대(靑瓦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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