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미국 대통령의 ‘핵가방’을 들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서 있는 장교
1988년 5월 31일,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미국 대통령이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보좌관으로 동행한 우디 리(WWilliam ‘Woody’ J. Lee) 해안경비대 소속 소령이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핵가방을 휴대하고 붉은 광장에 서있다. 혹시나 모를 강탈이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가방의 손잡이와 손목이 가죽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다.
무게 20kg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가죽으로 싼 형태의 핵가방은 대통령이 백악관을 이탈할 때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담당하는 보좌관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광범위한 심리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추가로 국방부, 비밀경호국, FBI의 신분조사도 기다리고 있다.
▲ 핵가방을 휴대하는 군 보좌관 【사진: Joshua Roberts】
핵가방 내부에는 핵공격의 목표물이 적힌 문서가 든 금속 케이스와 통신장비가 들어있으며, 대통령과 참모진이 핵전쟁 중 피신할 수 있는 비밀벙커 목록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핵가방 내부에는 발사버튼 같은 것은 없으며, 대통령으로부터 핵공격 명령이 하달되면 핵잠수함과 ICBM을 비롯한 폭격기의 지휘관이 핵미사일을 장전하고 발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최고권한자 한 명이 광기에 휩싸여서 멸망의 버튼을 누를 일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대통령은 뉴클리어 풋볼을 통해 명령을 내리는 최고권한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비스킷(biscuit)’이라고 알려진 보안카드를 개인적으로 휴대하는데, 혹시나 대통령의 신변에 이상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부통령도 같은 카드를 지니고 있다가 상황발생 시 카드의 효력이 발령된다.
미국 뿐만 아니라 소련(러시아)의 지도자들도 1983년부터 이러한 핵가방을 휴대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의 옐친센터(Yeltsin Center)에는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1931~2007)이 휴대하던 핵가방의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 보리스 옐친의 핵가방. 고령의 최고지도자가 신속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간단하게 설계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