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불가촉천민들의 삶을 담은 사진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지만 대외적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구시대적 계급제도가 떠오르는 아이러니한 국가이다.


바로 ‘카스트 제도(caste system)’라고 알려져 있는 악습으로 최상층에 성직자인 브라만, 왕과 귀족 무사들이 속한 크샤트리아, 농민과 상인 등 평민들인 바이샤, 노예인 수드라 계급으로 나뉘게 된다.


이런 카스트제도에서 노예보다도 낮은 계층, 즉 인간으로 취급도 받지 못하는 계급도 있다. 보통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s)’이라고 불리며 산스크리트어로 찬달라(Chandala), 달리트(Dalit), 파리아(pariah)등으로 칭한다. 201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16.6%가 불가촉천민으로, 숫자로 따지면 2억 명이 훌쩍 넘는다.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1
▲ 카스트 제도 계급


1947년, 인도는 카스트제도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종교가 바탕이 되어 뿌리 깊게 내린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주변 힌두교 국가인 네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팔 역시 인도보다는 좀 늦은 1963년에 카스트제도를 폐지했으나 여전히 10%(약 300만)가 넘는 불가촉천민들이 때로는 목숨까지 위협받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아래의 사진들은 과거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네팔 불가촉천민들의 소외된 삶을 담은 모습들이다.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3
▲ 1963년 네팔 카드만두의 한 학교에서 촬영된 불가촉천민 남성.

불가촉천민들은 다른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과 물과 음식을 함께 먹을 수가 없다. 함께 일하는 학교의 교직원들이 아침식사와 도자기 잔으로 차를 마시는 동안 이 남자는 통조림을 하나 지급받아 홀로 식사를 해야 했다. 【사진: Jim Fisher】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5
▲ 1966년, 네팔 굴미(Gulmi)의 제화공들. 다른 계급과 접촉을 하지 못했던 불가촉천민들은 도구를 들고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발 수선 등의 일을 도맡았다. 【사진: Bill Lambeth】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7
▲ 1966~1968년경, 네팔 파사(Parsa)에서 불가촉천민들이 소를 도축하고 가죽을 벗기고 있다.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9
▲ 1970년, 네팔 옥할드헝가(Okhaldhunga)의 불가촉천민 치과의사(?).

도구를 사용하는데 능숙했던 불가촉천민들은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병원을 못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충치를 제거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진: Bill Hanson】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11
▲ 1977년 네팔 포카라 근교 카스키(Kaski)의 불가촉천민 대장장이들. 이들은 농업 이외에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직업을 주로 가졌다. 【사진: Rich Pfau】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13
▲ 1989년 네팔 바즈항(Bajhang)의 불가촉천민 거주지역. 이들은 평생 가난을 짊어지고 가장 천시받는 일을 부여받고 살아가게 된다.

국제인권 감시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2007년 보고서는 불가촉천민의 삶에 대해 ‘은밀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분리정책)’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진: Mary Cameron】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15
▲ 2007년 네팔 서남부 카일랄리(Kailali) 지역에 있는 티카 푸르(Tikapur) 자치구의 지도자들은 주민들에게 ‘마을의 우물을 불가촉천민들과 공유할 것’을 명령했다.

이로써 불가촉천민들은 매일 물을 구걸하고 다녀야 하는 삶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가촉천민들과 최대한 접촉하지 않고 우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이들은 냄비에 물을 부어줄 친절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사진: Jakob Carlsen】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17
▲ 2007년, 네팔 도티(Doti)의 74세의 불가촉천민 히라 파르키(Hira Parki)는 열 살 때부터 힌두교 사원인 샤일즈화리(Shaileshwari) 밖에서 북을 치는 일을 해왔지만 사원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시민활동가들이 불가촉천민도 사원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해냈지만 파르키는 오랜 세월 체화된 두려움으로 인해 들어가기를 거부했고, 결국 반강제로 사원 안으로 데려가자 그는 비명을 지르고 기절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NayanTara Gurung Kakshapati】

 

힌두교에서 소를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하고 있으나 물소는 예외이다. 하지만 예외라 할지라도 가장 더럽고 죄악시하는 일로 취급받았고, 이는 최하층인 불가촉천민들의 몫이었다. 【사진: Bob Nichols】 19
▲ 2009년, 네팔 바르디야(Bardiya)의 어린 학생들.

현대사회에서 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에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불가촉천민 학생들이 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조상들이 몸담았던 직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사진: NayanTara Gurung Kakshap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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