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숫자로 보는 타이타닉 침몰

$60


1912년 4월, 타이타닉호의 2등실 티켓의 당시 가격은 60달러.
탑승한 승객 중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고, 이들에게는 3등실의 제일 저렴한 자리도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다.

 

아래는 당시 등급별 티켓의 가격과 2021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1

 

– 1등실: (응접실이 딸린 스위트 룸) £870/ $4,350 (2021년 가치 $117,307)

– 1등실: (침실칸) £30/ $150 (2021년 가치 $4,045)

– 2등실: £12/ $60 (2021년 가치 $1,618)

– 3등실: £3~£8/ $15~$40 (2021년 가치 $404~$1,079)


총 840개의 객실이 있었고 1등실 416개, 2등실 162개, 3등실 262개였다.

 

26개월


타이타닉(RMS Titanic)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해럴드 앤 울프(H&W) 사가 1909년 3월 31일 건조를 시작하여 1911년 5월 31일 진수하였다. 건조에서 진수까지 대략 26개월 정도가 걸린 셈.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3


타이타닉은 3척의 올림픽급 대양 횡단선 가운데 두 번째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다른 2척은 RMS 올림픽(RMS Olympic)과 HMHS 브리타닉(HMHS Britannic)이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0


1912년 당시 생후 9주, 즉 0세의 아기였던 ‘밀비나 딘(Millvina Dean)’여사는 타이타닉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5


그녀의 모친은 당시 두 살이었던 오빠와 딘을 구명정에 태우고 탈출했지만, 아버지는 배에 남았고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미국 캔자스를 향해 이민을 떠나는 중이었던 가족은 영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7
▲ 마지막 생존자 ‘밀비나 딘’ 여사

 

밀비나 딘(Millvina Dean) 여사가 2009년 5월 31일 영국 사우스햄튼의 요양원에서 97세를 일기로 사망함으로써 타이타닉의 마지막 생존자도 0이 되며 참사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1178


타이타닉에 있던 구명보트의 총정원은 1,178명이었으나 구출된 사람은 710명에 불과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9


그 이유는 빙하와 충돌한 후에도 사람들은 ‘설마 이 큰 배가 침몰하겠어‘라는 안이한 생각과 다른 배가 금방 구조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구명정에 서둘러 탑승하지 않았기 때문.

 

여자와 아이들 우선‘이라는 원칙만을 강조해 남성들을 서둘러 태우지 않은 것도 정원 미달의 원인이었다. 20세기 초의 남자들에게는 여자와 아이들에 앞서 탑승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의식이 깔려있기도 하였다. 게다가 타이타닉의 승무원들은 구명정을 내리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구명정의 정원이 차서 무거워지면 해수면 가까이 내려야 하는 것도 몰라서 공중에 있던 구명정이 뒤집히거나 승객들이 바다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2℃


타이타닉 침몰 당시 바닷물의 온도는 영하 2도였다.
미국 탐색구조 특수부대에 따르면 0℃ 이하 물에서 생존 기대 시간은 15분~45분 정도에 불과하다. 생존을 기대한다 해도 의식을 잃는 시간은 그 이하로 내려간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11

 

타이타닉의 경우 구조선 카파시아 호가 도착한 것은 사고 발생 1시간 50분 후였다.

 

4


타이타닉의 굴뚝은 원래 3개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4개의 굴뚝이 더 파워풀해 보이고 디자인적으로 우아해 보인다는 이유로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13


허세스러운 굴뚝의 크기는 2대의 기차가 동시에 지나갈 만큼 거대했으며 환기구 외의 기능은 없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15

 

또 타이타닉의 내부에는 4대의 전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각각 1등실에 3대, 2등실에 1대가 비치되었다. 또한 레스토랑도 4군데가 있었다.

 

1898


타이타닉이 침몰하기 무려 14년 전인 1898년에 쓰인 모건 로버트슨(Morgan Robertson, 1861~1915)의 소설 속에는 타이타닉 참사를 예견한 듯한 상황 설정이 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17
▲ 모건 로버트슨과 그의 소설

 

소설 속의 선박 이름은 TITAN이었고 이름뿐 아니라 디자인도 흡사했다. 타이타닉호도 그리스 신화 ‘타이탄’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게다가 빙산과 충돌하여 대서양에 침몰하는 것까지 타이타닉의 운명과 같았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19
▲ 타이타닉 침몰지점

 

그밖에 소설의 배경이 4월의 밤이라는 점, 배의 크기(타이타닉: 268m, 타이탄: 244m), 승객수(타이타닉:2,200명, 타이탄: 2,000명)까지 흡사한 것은 예언서처럼 보일 정도인데 작가는 ‘대형 선박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상세하게 쓰다 보니 맞아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샴페인(Champagne)


1911년 5월 31일 오후 12시 5분, 진수식 행사를 알리는 두발의 폭죽이 발사되었고 12시 13분 타이타닉의 고정장치가 풀리고 배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 바다로 하강을 시작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21
▲ 타이타닉 진수식


배를 만든 조선공들을 치하하고 항해의 안전을 비는 진수식(進水式)을 가질 때 뱃머리에 여자가 샴페인(Champagne)을 내려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타이타닉의 경우 샴페인을 내려치는 등의 행사는 갖지 않았고 고정장치를 푼 것도 해럴드 앤 울프(H&W)의 조선공 팀장인 R.F. 케이스(Robert Falconer Keith, 1861~1940)였다. 제대로 된 진수식을 갖지 않아서인지 이를 타이타닉의 불운의 한 전조로 보기도 한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23
▲ R.F. 케이스

 

하지만 당시 타이타닉의 소유주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은 회사의 정책으로 진수식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행사는 타이타닉은 물론 다른 배에서도 갖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25
▲ 타이타닉 진수식 초청장

 

샴페인 병을 내려치지는 않았지만 그 밖의 행사는 거창했다. 타이타닉이 바닷속으로 잘 미끄러져 들어가게 하기 위해 무려 22톤의 윤활유가 사용되었고, 90명의 언론인과 10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 이날 조선소 직원 제임스 도빈스(James Dobbins)는 선체 버팀목 근처에 있다가 부상을 당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당일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석탄 파업


승객들 중에는 애초에 타이타닉에 탑승할 계획이 없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27


그런데 당시 석탄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고, 석탄 여유분의 대부분이 거대 여객선 타이타닉의 처녀항해를 위해 투입된 관계로 다른 많은 배들의 항해가 취소되었다.
결국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타이타닉에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18km


당시 타이타닉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29


이 경적소리는 무려 18km 밖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만 결과적으로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했다.

 

3,560벌


타이타닉에는 구명조끼가 3,560벌이 실려있었고 탑승인원 2,224명을 감안하면 충분한 양이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31


현재 이 구명조끼 중 단 6벌만이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있다. 2008년 6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경매에 출품된 피 묻은 구명조끼는 34,692파운드(한화 약 5,446만 원)에 판매되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33

 

하지만 차가운 바다에서 생존에 필요한 구명정은 20척에 불과했고 정원은 1,178명이었다. 이마저도 모두 탑승하지 못해 710명만이 생존했다.


타이타닉에 실을 수 있는 구명정은 최대 64척이었다. 만약 64척이 실려있었다면 3,547명이 정원이라 승객 전체를 수용할 수 있었다.

 

800m


타이타닉의 스크루는 3개로 바깥쪽 두 개는 38톤, 중앙의 스크루는 22톤에 달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35


이런 거대한 스크루로도 20노트(약 37km/h)의 속도에서 급후진 실험을 한 결과 타이타닉을 완전히 정지시키는데 800m가 필요했다. 어둡고 잔잔한 바다에서 육안으로 빙산을 발견했을 때 충돌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던 것.

 

3840m


타이타닉이 수면 밑으로 침몰 후 해저면에 완전히 닿기까지는 겨우 5~10분으로 속도로 환산하면 56km/h의 빠른 속력으로 내려갔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37


현재 타이타닉은 대서양 해저 3,784m 아래에 있으며 이곳의 수압은 400이다.

 

7월과 8월


아래 사진은 타이타닉의 잔해가 아니라 침몰된 타이타닉이 발견된 후 20년 동안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이다.
이곳에는 과학자와 영화제작자, 화물 인양업체, 사학자, 유물을 약탈하는 자들까지 다녀갔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39


심지어 2001년 7월 28일에는 데이비드 레이보위츠(David Liebowitz)와 킴벌리 밀러(Kimberley Miller)가 소형 잠수정을 타고 내려가 타이타닉의 뱃머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며 타이타닉 유족협회로부터 ‘모욕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였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41
▲ 영화 ‘타이타닉(1997)’의 뱃머리 장면


이에 미국과 영국은 어떤 목적으로든 7월과 8월에만 방문을 할 수 있는 조약을 만들었고, 다른 국가들도 참여해주기를 권하고 있다. 
2012년 4월 14일 침몰 100년 후, 타이타닉호의 잔해는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뉴욕 타임스


타이타닉 침몰 사고가 일어났던 순간, 대부분의 신문은 잘못된 뉴스를 보도했다.

 

타이타닉, 빙산과 충돌했지만 승객은 안전해‘라는 내용이 대부분.

 

기자회견에서조차 회사의 부사장 필립 프랭클린은 “타이타닉이 침몰할 위험은 없습니다. 이 배는 안전하고 승객은 어떤 불편도 없을 겁니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실제로 타이타닉 사고 전 10년간 화이트 스타 라인 사의 여객선을 이용한 2,179,594명 중 사망한 사람은 두 명에 불과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43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는 ‘타이타닉이 침몰했다’는 속보를 제일 먼저 타전한 신문사가 되었다. 이후 뉴욕타임스의 속보는 불행하게도 유일한 진짜 뉴스가 되었다.

 

8,700만 달러


존 제이콥 애스터 4세
(John Jacob Astor IV)는 타이타닉에 탑승한 승객 중 가장 부자로 당시 재산은 무려 8,7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2021년 현재 가치로 약 23억 4600만 달러(한화 약 2조 6000억)이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45
▲ 존 제이콥 애스터 4세


그는 모피 무역과 부동산 사업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애스터 가문의 일원으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뉴욕을 방문하면 머무르는 17층 규모의 아스토리아 호텔(1897년 개장)의 소유자였다.

(*아스토리아 호텔은 1929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건설을 위해 철거되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47
▲ 구 아스토리아 호텔과 현재 모습

 

당시 세계 최고 부호중 한 명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으며, 신부만을 구명정에 태우고 자신은 배에 남았다. 당시 타이타닉에 탔던 신혼부부는 13쌍이었다.

 

750만 달러


타이타닉은 1912년 당시 750만 달러의 추정비용으로 건조되었다. 이는 현재가치로 약 2억 달러지만 같은 규모로 더 안전한 현대식 선박으로 건조한다면 4억 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49


또한 750만 달러는 오로지 인건비와 자재만을 계산한 선박의 건조비용이다. 화이트 스타 라인에게 조선소가 청구한 비용은 이윤이 추가되었으므로 750만+이다.

 

납치


타이타닉 침몰이 임박하자 자신을 호프만(L. Hoffman)이라고 밝힌 남성이 구명정의 승무원에게 어린 두 아들을 맡겼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51
▲ 미셸(4세) | 에드몬드(2세)


아이들은 영어를 말할 수 없었고 연락처도 없었으므로 일등석 승객이었던 마가렛 헤이즈가 잠시 보호하고 있다가 부모를 찾는다는 신문기사를 본 엄마가 연락을 취해 프랑스로 돌아갔다.
어린아이들을 맡긴 아버지의 실제 이름은 미셸 나브라틸(Michel Navratil)로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양육권을 빼앗기자 두 아들을 엄마 몰래 데리고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가던 중이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53
▲ 미셸 나브라틸


미셸 나브라틸의 시신은 맥케이 베넷(Mackay-Bennett)호에 의해 15번째로 인양되었는데, 그가 티켓에 가명으로 쓴 호프만(Hoffman)은 유대인의 성씨였기 때문에 실은 가톨릭 신자인데도 캐나다 핼리팩스 부근의 유대인 공동묘지(Baron de Hirsch Cemetery)에 안장되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55
▲ 미셸 마르셀 나브라틸(1908~2001)

 

무사히 엄마에게 돌아간 아이들 중 형 미셸 마르셀 나브라틸은 2001년 92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사망하였고(남자 승객 중 가장 오래 생존), 동생 에드몬드는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후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부상 후유증으로 1953년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6,328t


타이타닉의 총톤수는 46,328톤으로 무려 1만 마리의 아프리카 코끼리와 맞먹는다.
진수식 당시는 24,360톤으로 매우 가벼웠는데(?) 이는 아직 엔진, 보일러, 굴뚝, 숙박시설, 가구 및 각종 부자재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57


건조 당시 세계 선박 역사상 가장 컸던 타이타닉은 전장 269m 폭은 28m에 달했으며, 진수식 후 거대한 타이타닉을 깊은 바다로 견인한 예인선은 5대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인 MS Allure of the Seas는 362m이다.

 

The Atlantic Daily


타이타닉은 디 애틀랜틱 데일리(The Atlantic Daily)라는 선내 신문이 발행되어 게시판에 붙여졌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59


이 신문에는 뉴스와 광고, 주식 가격, 경마 결과와 당일의 식사메뉴들이 적혔다.

 

애견인들


타이타닉에는 12마리 이상의 개가 태워졌는데 모두 1등실 승객들의 개들이었다.
비록 동물이지만 1등실 성인요금의 절반 가격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61

차우차우, 킹 찰스 스패니얼, 에어데일 테리어, 프렌치 불도그, 포메라니안, 그레이트 데인 등 고급 품종들이 많았는데 이 개들 중에서 살아남은 개들은 3마리에 불과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63
▲ 마가렛 헤이즈와 LADY


그중 한 마리는 마가렛 헤이즈(Margaret B. Hays) 양이 담요로 꽁꽁 싸서 몰래 7호 구명정에 데리고 탄 ‘LADY’라는 이름의 포메라니안이었다. 승무원은 담요에 싸인 것이 아기라고 생각해 구명정 탑승을 허락했고, 운 좋게 살아난 LADY는 1920년까지 살았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65
▲ 엘리자베스 로스차일드

 

두 번째도 엘리자베스 로스차일드(Elizabeth B. Rothschild)의 포메라니안이었다.


그녀는 코트에 개를 숨긴 채 6호 구명정에 탑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조선인 카파시아 호(RMS Carpathia)의 선장이 개는 옮겨 타지 못하게 하자 구명정에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선장이 탑승을 허락했고 둘 다 구조되었다. 하지만 운 좋게 살아난 포메라니안은 몇 주 후 다른 개에게 물려 죽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67
▲ 헨리 슬리퍼 하퍼와 쑨원

 

마지막 세 번째는 헨리 슬리퍼 하퍼의 ‘쑨원(Sun Yat-sen)’이라는 이름의 페키니즈였다. 헨리는 그의 아내와 개까지 3호 구명정에 탑승해 살아남았다.


운 좋게 목숨을 구한 개들은 인형과 크기가 다를 게 없는 ‘작은 종’ 이어서 몰래 데리고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형종들은 묶여있거나 우리에 갇혀있었고 데리고 갔더라도 구명정에 탈 수 없게 했을 것이므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타이타닉이 큰 각도로 기울던 시점에 개들이 누군가에 의해 풀려나 갑판 위에 뛰어다니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도 갇혀서 죽어갈 개들을 불쌍히 여긴 애견가였을 것이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69

▲ 엘리자베스 이샴과 그레이트 데인


엘리자베스 이샴(Ann Elizabeth Isham)이라는 여성은 가족과 같은 그레이트 데인과 함께 타이타닉에 탑승했다. 맨해튼에 살고 있던 동생의 초청으로 함께 여름을 보내기 위해 가던 길로, 그녀가 평소 개를 끔찍이 사랑했기 때문에 함께 배를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타이타닉이 침몰했을 때 사망한 1등실의 여성들은 4명에 불과했는데, 그중에 엘리자베스 이샴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족들은 엘리자베스가 왜 구명정에 타지 못했는지 의아해했는데, 나중에야 목격자들로부터 그녀가 그레이트 데인의 큰 덩치 탓에 구명정 탑승이 거부당하자 ‘개와 떨어지느니 타이타닉에 남겠다‘라고 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엘리자베스 이샴의 시신이 인양선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녀의 팔은 자신의 개와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그레이트 데인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고 한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71
▲ 타이타닉의 개들


구조선은 340구의 시신을 바다에서 발견했고 심하게 훼손된 유해를 제외한 209구를 캐나다 핼리팩스에 묻었다. 하지만 죽은 동물들은 단 한 구도 수습되지 않았다.

 

고양이


고양이는 장기간 항해하는 선박의 쥐를 잡아먹기도 하는 등 배에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겨 당시 선원들이 고양이를 배에 태우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73


당시 살아남은 몇몇 승무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타이타닉에도 마스코트와 같은 제니(Jenny)라는 고양이가 있었다고 한다. 제니는 타이타닉의 자매선이었던 올림픽 호에서 옮겨져 함께 항해를 시작했다.

 

HMHS 브리타닉의 경우 원래 이름은 RMS 자이겐틱(Gigantic)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이후 불운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RMS 브리타닉으로 개명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병원선으로 활약하던 중 독일군의 기뢰에 침몰하였다. 75
▲ 바이올렛 제섭


승무원이자 간호사였던 바이올렛 제섭(Violet Jessop, 1887~1971)에 따르면, 식당에서 일하던 짐 멀홀랜드(Jim Mulholland)라는 일꾼이 제니를 끔찍하게 챙겼고 4마리의 새끼도 그의 근처에서 낳을 정도로 따랐다고 증언했다.

 

그로 인해 제니의 뒷이야기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첫 번째는 제니가 새끼들과 함께 침몰해 죽었을 거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 다른 하나는 타이타닉이 사우샘프턴에 정박해 있을 때 제니가 갓 낳은 새끼를 배 밖으로 하나씩 물어 옮겼고, 이를 본 짐 멀홀랜드가 배가 위험하다는 징조로 받아들이고 타이타닉에서 도망치듯 내려 아끼던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새끼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고양이의 습성과 아홉 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고양이라면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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