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④ 태평양전쟁 종군기자의 마지막 사진
1942년 8월 24일 오후, 미국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가 일본항공모함 쇼카쿠(翔鶴)와 즈이카쿠(瑞鶴)로부터 날아온 99식 함상폭격기(九九式艦爆)와 제로센(零戦)의 공격을 받으며 동부 솔로몬 해전이 발발했다.
▲ 일본 전투기의 공격을 받는 USS 엔터프라이즈(CV-6)
엔터프라이즈호는 능숙하게 첫 아홉 발의 폭격은 회피했으나, 오후 4시 44분경 떨어진 폭탄이 명중하며 갑판을 꿰뚫고 들어가 폭발했다. 이 공격으로 35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부상을 입는다.
▲ 갑판 아래에서 터진 폭발로 불룩해진 엔터프라이즈 활주로. ⓒ US Navy
30초 후에는 또 다른 함상폭격기들이 떨어뜨린 두 번째 폭탄이 엔터프라이즈호의 우현에 있던 5인치 대공포좌의 탄약실을 직격해 큰 폭발로 이어지면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
▲ 처참하게 파괴된 5인치 대공포좌. ⓒ US Navy
1분 후 마지막 세 번째 폭탄이 활주로에 떨어지는 모습이 찍힌 것이 바로 아래에 나오는 유명한 사진의 모습이다. 이 공격을 끝으로 일본 전투기들은 함대로 귀환했고 엔터프라이즈는 신속히 수리작업에 들어가 다행히 1시간 만에 응급수리를 마치고 진주만으로 복귀했다.
▲ USS 엔터프라이즈에 떨어지는 일본 폭격기의 폭탄
오랫동안 이 세 번째 폭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엔터프라이즈호의 전투비행 6대대에 소속되어있던 사진작가 로버트 리드(Robert Frederick Read)가 촬영하고 그 순간 폭발의 여파로 사망한 것으로 믿어졌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직무에 대한 집념과 용기를 보여준 것이었기에 더욱 강렬한 이야기로 다가왔던 것.
▲ 로버트 리드(Robert Frederick Read)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로버트 리드가 이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폭탄이 떨어졌을 때 이미 현장에서 즉사한 상태였다. 로버트의 사진촬영실은 큰 폭발이 일어났던 5인치 대공포좌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폭발 순간이 담긴 사진은 그의 동료 사진작가였던 매리언 라일리(Marion Riley)가 엔터프라이즈호의 함미 높은 곳에 설치해 놓았던 카메라에 담긴 것으로 사실 동영상 촬영의 프레임이다.
위 비디오에는 두 번의 폭발 순간이 촬영되어 있는데, 2:31의 폭발로 로버트 리드가 사망했고 3:05의 폭발이 바로 이 사진을 찍지도 않은 로버트 리드를 유명하게 만든 순간이다.
매리언 라일리는 2차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를 촬영했지만 어떤 상이나 찬사도 받지 못했다. 사진의 유명세로 볼 때 그는 자신이 아닌 동료가 영웅이 된 것을 알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떨어지는 폭탄 속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전사한 위대한 동료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