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3일

컬러 TV 도입을 고민하던 후진국 한국, 세계 TV시장 점유율 1위가 되다.

요즘은 개인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형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텔레비전은 집의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은 TV를 구입할 때 ‘컬러냐 흑백이냐’를 따지는 일은 거의 없다. 컬러 TV는 당연한 것이 돼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70년대까지만 해도 아래와 같이 컬러 TV는 선진국을 상징하는 가전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컬러 티비 도입 시기를 고민하는 기사

– 칼라 TV 언제쯤 볼 수 있을까?
– 방송계와 제조업자들 서두르지만 국민소득 비춰 5년 후에나

 

천연색 ‘텔레비전’을 언제부터 볼 수 있느냐가 큰 관심거리로 등장되고 있다.

 

‘컬러’TV 문제가 대중의 관심거리로 등장하게 된 것은 체신부가 통신위성 지구국을 설치(70년 3월 준공 예정)하고 미국이 발사한 통신위성(INTEL SAT 3호)을 이용, 세계 각국의 ‘컬러’TV를 중계(1회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TV 방송계나 전자 공업계는 이보다 훨씬 앞서서 ‘컬러’TV 방송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요즘은 개인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형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텔레비전은 집의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
▲ 금산 위성통신 지구국 투시도


새로 흑백 TV 방송허가를 받은 문화방송(MBC)은 이미 2백여 대의 컬러 TV 세트(모니터용)를 포함한 컬러 TV 방송시설을 발주했다는 소문도 있고, 문화방송과 한때 자매관계를 맺고 있던 모 일간신문사에서도 컬러 TV 방송을 하려고 신축사옥 옥상에 안테나를 설치 중에 있다고 한다.

(중략)

컬러 TV에 대한 집념은 TV 생산(엄밀한 의미에서 조립) 회사에서도 강하게 작용하여 동남전기회사에서는 이미 컬러 TV 조립에 대한 기술훈련을 마쳤으며, 필요하다면 3개월 내에 컬러 TV를 상품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와 기술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샤프(Sharp)’는 가까운 시일 내에 내한하여 컬러 TV에 관한 중대 결정을 동남전기와 상의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컬러 TV에 대한 관심은 TV 방송업계나 생산업자들 사이에 지대한 관심사인 것만은 틀림없다. 다만 정부가 컬러 TV 허가를 언제 해주느냐 하는 것만이 남아있는 셈. 방송 허가권을 가진 체신부 고위당국자는 이 문제에 대해 “문화공보부는 어떤 생각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경제실정이나 공업 수준으로 봐서 아직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컬러 TV가 경제와 공업 문제로 연결된 것은 값이 흑백 TV보다 3배 이상 비싼 데다 흑백 TV는 노임(약 20%)을 포함해서 가격의 약 48%가 국산화되고 있지만 컬러의 경우는 가격의 30% 정도만 국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흑백 19인치의 경우 정부지정 가격이 74,200원이니까 컬러 TV는 최소한 20만 원선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 값은 쌀로 환산하면 40 가마(정부미 방출 가격 기준)나 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반수 이상이 농민이니까 농민을 기준으로 본다면 논 10마지기(2천 평)를 소유한 농가(중류)가 1년 농사지은 것을 몽땅 바쳐야 컬러 TV를 1개 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도시에서도 일부 고소득층에서나 마음 놓고 살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국민소득이 1천 달러 이상이라야 컬러 TV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68년도 잠정추계에 의하면 168달러이다. 컬러 TV가 국내에서 생산이 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피땀 흘려 벌어들인 외화로 수입을 해야 한다는 데는 사실상 문제가 있다.

 

일부 TV생산업자는 컬러 TV를 조립해서 국내에서 사용하는데 역점을 둘 것이 아니라 수출전략상품으로 개발하자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부속품을 생산한다면 몰라도 부속품을 수입해다가 조립만 해서 수출할 경우 이중 포장비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수출업자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중략)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빨리 우리 손으로 TV 정도는 생산하는 날이 와야겠는데, 현재의 경제여건으로는 5년쯤 후인 74년 경이나 컬러 TV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자공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매일경제 1969년 3월 1일】

 

54년에 시작된 컬러 방송, 80년까지도 한국은 ‘시기상조’


세계 최초의 컬러 TV 방송은 미국 CBS에서 시험적인 방송을 거친 후 1954년 1월 1일부터 미 전역에서 전격 컬러 TV의 시대가 열렸다.

 

요즘은 개인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형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텔레비전은 집의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
▲ 50년대 미국의 컬러 TV 방송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960년에 최초의 컬러방송을 시작한 반면 이때의 한국은 정치, 경제적 혼란으로 TV의 색깔을 따질 여유는 전혀 없던 시기였다.

 

기사가 쓰인 1968년도 즈음, 한국은 10%를 훌쩍 넘는 초고도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여전히 198달러(countryeconomy.com)에 머물고 있었다. 1966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컬러 TV 방송을 시작한 필리핀의 225달러보다 아래였다.

 

요즘은 개인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형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텔레비전은 집의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5
▲ 1968년 주요 선진국 1인당 GDP. 한국은 198달러


이 시기 컬러 TV 방송이 불가능한 도전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웃나라 일본이 컬러방송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고, 1965년 6월 22일 조인된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용역과 기술을 제공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TV 조립업체(국산부품은 전무했다)도 상품화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컬러방송의 가장 큰 걸림돌은 ‘컬러방송은 시기상조’라며 불허하는 정부였다. 하지만 이런 당국의 입장은 구시대적 발상만은 아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정책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 컬러 TV의 가격은 최소 추정치가 ’20만 원’. 이는 2021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515만 원 해당하는 엄청난 고가였고, 기사 내용대로 당시 한국의 경제인구분포는 절반 이상이 고소득자가 없는 농업인이었다.

 

요즘은 개인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형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텔레비전은 집의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7
▲ 1969년 20만 원의 현재 가치


한국 정부의 판단은 컬러 TV 판매를 허용하면 대도시의 극소수 고소득자만이 구입을 할 것이고, 이는 국민 다수의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였던 것이다.

 

한국 정부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는 이스라엘의 경우도 이와 같은 이유로 컬러방송을 연기했을 정도로 컬러 TV는 선진국 국민들의 사치품이었다. (한국은 1981년, 이스라엘은 1983년 컬러방송을 시행했다)

 

컬러방송을 고민하던 국가, 세계 TV 시장을 독점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기업 삼성이 ’15년 연속 세계 TV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아직 두 달이 남은 2021년을 포함한다면 16년 연속 1위이다.

 

요즘은 개인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휴대형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시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텔레비전은 집의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9
▲ 2021년 상반기 세계 TV 시장 점유율


심지어 삼성의 라이벌은 역시 한국 기업인 LG전자. 두 업체의 세계 TV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50%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로, 1969년 ‘부속품을 들여와 컬러 TV 조립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던 기사를 놓고 보면 그야말로 50년 만의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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