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㉚ 1855년, 영국 최초의 하마
동물원 우리에서 방문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있는 하마의 모습.
이 사진은 후안 데 몽티존 백작(Infante Juan, Count of Montizón)이라는 인물이 찍은 것으로, 그는 1853년부터 사진 촬영을 취미로 시작했으며 영국 왕립사진협회(The Royal Photographic Society)의 창립멤버였다.(창립 당시는 런던사진협회)
▲ 후안 데 몽티존 백작(1822~1887)
마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동물원인 런던동물원(London Zoo, 1827년 설립)도 1847년에 일반에 공개된 상태여서 상주하고 있던 동물들의 모습이 촬영되어 남아있다.
1855년에 발간된 사진협회의 앨범에 수록된 런던동물원 하마는 고대 로마 이후 유럽에 온 최초의 하마이자 영국 최초의 하마였던 ‘오바쉬(Obaysch)’였다.
▲ 방문객이 없자 눈을 뜬 오바쉬
오바쉬는 이집트의 오스만제국 총독 압바스 파샤(Abbas Pasha)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받은 그레이하운드와 디어하운드에 대한 답례로 보내기 위해 백나일강(White Nile)에서 사로잡은 5~6개월 정도의 젖도 떼지 않은 새끼하마였다.
먹이인 우유를 제공할 소떼와 함께 이집트 카이로에서 화물선을 타고 영국 사우샘프턴 항구까지 온 오바쉬는 1850년 5월 25일, 평생을 살게 될 런던동물원에 도착했다.
▲ 사육사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
요즘에야 미디어를 통해 하마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사진조차 흔치 않았던 시대에 하마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런던동물원에는 매일 10,000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입장했고 오바쉬의 그림과 기념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850년 런던동물원의 입장객 수는 360,462명으로 전년도(168,895명)의 두배를 넘어섰다.
폭발적인 관심 속에 오바쉬가 순조롭게 적응하긴 했지만 야생의 새끼하마를 홀로 먼 유럽의 섬나라로 보낸 것이 안쓰러웠는지 압바스 파샤는 1854년 7월 22일 ‘아델라(Adhela)’라는 암컷하마를 추가로 보냈다.
▲ 1870년, 아델라와 오바쉬(뒤) / 사진: Frederick York
‘영국 최초의 암컷하마’ 아델라는 오바쉬와 순조롭게 합사는 했으나 새끼를 갖지 못하다가 16년 만인 1871년에야 두 마리를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이틀 만에 죽어버렸다. 하지만 이듬해인 1872년에 태어난 두 마리 중 암컷 한 마리가 살아남았다.
▲ 1873년, 아델라와 새끼를 그린 그림
새끼가 태어난 날짜는 영국의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가이 포크스(Guy Fawkes)가 경찰에 체포된 11월 5일이어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 가이 포크스 가면
인간 가이 포크스는 남성이지만 당시 생후 몇 달이 지나도록 새끼하마의 암수구분이 불분명했고, 최종적으로 수컷으로 판정되었는데 이름을 붙인 다음 더 크고 보니 암컷이었다. 하마 가이 포크스는 동물원에서 어미가 직접 기른 최초의 새끼하마로 기록되었다.
▲ 1895년, 하마 ‘가이 포크스’와 고양이 / 사진: Gambier Bolton
이후 이들 하마가족이 함께 한 것은 불과 6년 정도로 1878년에 오바쉬가 사망했고, 아델라는 4년 후인 1882년에 사망했다. 오바쉬는 영국 최초의 하마이자 영국에서 죽은 최초의 하마가 되었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가이 포크스는 1908년에 사망했는데 야생하마의 평균수명이 40~50년 정도이고, 현대의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하마가 50~60년을 생존하는 것으로 볼 때 당시 동물원의 구조는 오로지 방문객의 편의에 맞춰져 있었고 동물의 생태나 습성은 고려되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 오바쉬, 아델라, 가이 포크스 하마 가족
한편 오바쉬의 사체는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의 박제사였던 에드워드 제라드(Edward Gerrard, 1810~1910)가 개인적으로 15파운드(2022년 현재가치 1902파운드, 한화 약 300만 원)에 구매해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