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하는 나라
세계에서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현재 세계는 협정세계시(UTC)를 국제표준시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전에 사용되었던 표준시각인 그리니치 평균시(GMT)의 기점인 영국 런던을 UTC+0으로 하여 동쪽으로 UTC+1, 서쪽으로 UTC-1이 적용된다.
▲ 협정세계시(UTC)로 분류한 시간대
하지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경도 180도에서 UTC+12와 UTC-12가 겹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 위치에 설정된 선이 바로 날짜변경선이다. 비록 선에 불과하지만 이 선을 오가면 시간은 같지만 날짜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즉 동쪽 방향(UTC+)에서 날짜변경선에 가장 근접한 나라가 처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UTC+12에 가장 가장 근접한 나라인 뉴질랜드 혹은 피지가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일까.
원칙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 직선이 아닌 실제 날짜 변경선의 모습
시간대 적용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이나 정치적 상황, 국경에 따라 각 국가들이 편의에 따라 임의로 조정이 가능하다. 2015년 8월 15일, 북한이 평양표준시를 발표하면서 한국과 30분의 시차를 두었다가 3년 만에 다시 원상 복귀한 사례를 떠올리면 되겠다.
▲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평양표준시
국가 안에서 하루가 차이났던 키리바시
이처럼 시간대 조정이 가능함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하는 국가는 과거 수차례 변경되어 왔으며, 현재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키리바시 공화국(Republic of Kiribati)이 그 주인공이다.
키리바시는 길버트 제도, 피닉스 제도, 라인 제도 등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섬들이 길게 산재한 형태인데 면적은 811㎢로 제주도(1809.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독점적 경제수역(EEZ)은 3,500,000km²로 인도의 국토면적(3,166,382km²)보다도 크다.
▲ 미국과 비교되는 키리바시의 광활한 해양영토
이런 광범위한 범위에 하필 날짜변경선이 지나감에 따라 같은 국가임에도 섬마다 날짜가 달랐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미국 본토와 하와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같은 국가라면 같은 날짜가 쓰이는 것이 편한데 키리바시의 경우는 분명 자연적으로는 같은 순간임에도 선 하나로 날짜가 달라지면서 엄청난 불편을 초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995년 1월 1일, 키리바시는 날짜변경선을 넘어가는 영토에 변칙적으로 UTC+13과 UTC+14를 적용해 시간대는 틀려도 같은 날짜로 묶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로 등극하였고 매년 새해도 동쪽에 있는 라인제도가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었다.
▲ 국가별 시간대. 중국은 넓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단일시간대를 사용함에 따라 UTC+8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있다.
• 날짜변경선의 신비로운 상황 :
예를 들어, 아메리칸 사모아는 피지와 약 970km 떨어져 있다. 아메리칸 사모아에서 비행시간에 두 시간이 걸리는 비행기를 타고 화요일 밤 11시 30분에 떠나면 피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몇 시일까.
두 나라는 날짜변경선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아메리칸 사모아가 화요일 밤 11시 30분일 때 피지는 수요일 밤 10시 30분이다. 즉 피지 공항에 내리는 순간은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목요일 오전 12시 30분이 되어있다.
반대로 화요일 오전 11시 30분에 피지에서 아메리칸 사모아로 간다면 도착시간은 월요일 오후 2시 30분이다. 그야말로 시간여행을 하는 셈인데 그나마 다른 국가 간에는 신기한 경험 정도를 하는 것이지만 같은 국가 내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이 있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날짜를 변경한 키리바시와 사모아
키리바시의 근처에 있는 사모아의 경우에도 과거 UTC-11의 시간대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주요 무역 상대국인 호주, 뉴질랜드와 업무일이 달라서 큰 손해를 보고 있었다.
결국 2011년 11월 29일, 날짜 변경선을 동쪽으로 옮기면서 UTC+13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호주와의 시차가 21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었고, 뉴질랜드와는 23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면서 같은 날짜를 사용하게 되었다.
▲ 사모아는 2011년에 날짜변경선을 동쪽(점선)으로 옮겼다.
일각에서는 남태평양 국가들이 날짜변경선을 종종 바꾸는 이유가 ‘세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나라’라는 타이틀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 그것은 부수적인 이유일 뿐이다.
사모아 역시 과거 ‘세계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나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었으나 이를 포기할 정도로 관광산업보다는 날짜 변경의 경제적 이득과 행정적인 편의성이 개선되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새해를 맞는 곳
그렇다면 사모아가 포기한 ‘세계에서 가장 늦게 새해를 맞이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UTC-12에 가장 근접한 미국령 무인도인 베이커 섬(Baker Island)과 하울랜드 섬(Howland Island)이다. 지역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늦게 새해를 맞이하는 국가는 어디인가’라고 묻는다면 ‘미국’이 답이다.
▲ 베이커섬과 하울랜드섬(빨간 원)
키리바시와 이곳은 분명히 자연적으로는 같은 순간의 태양을 바라보게 되지만 날짜는 다른 오묘한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시간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지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