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된 1955년 미스코리아 김미정의 취미
1955년 7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미의 여왕을 선발하는 제4회 미스유니버스 대회가 열렸다.
미스유니버스는 현재 100개국에 가까운 나라들이 참가하는 규모의 국제대회로 성장했지만 이때는 초창기라 33개국만이 참가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전후 복구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도전에 나섰다.
미스코리아는 흔히 1957년이 최초의 대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한국일보가 주최한 대회 중 첫 대회라는 뜻이다.
▲ 1955년도 미스코리아 김미정
현재의 미스코리아 대회와는 별개로 1954년에도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참가를 했으며, 1955년에는 중앙일보사가 주최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선발된 김미정(金美貞)이 참가했다.
▲ 여의도 공항에서 중앙일보사 사장 최희섭 여사와 출국하는 김미정 【조선일보 1955.07.14】
1955년의 중앙일보는 지금의 중앙일보사와는 관련이 없는 곳으로 언론인 이북(李北, ?~1954)이 1952년 창간했는데, 그가 사망한 후 아내 최희섭 여사가 운영하며 미스코리아 대회를 후원한 것이다.
▲ 1955년 미스 유니버스 참가자들(빨간 원이 미스코리아). 인원이 적어 43명의 미국 주 대표들도 참가했다.
이 당시의 미스 유니버스는 7월 19일 롱비치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한 뒤 가장 호응이 큰 참가자에게 ‘Most Popular Girl’ 부문을 시상하였다. 이때 현지 기자들이 각국 미녀들에게 ‘미모를 가꾸는 비결’에 대해 인터뷰를 한 기사가 국내에 보도되었다.(동아일보 1955.07.22)
미스 유니버스 각국 대표의 ‘미용 비결’
세계 각국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이 20일 롱비치에서 신문기자들에게 그들의 미용 비결을 각각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미스 잉글랜드. Most Popular Girl로 선정되었다.
• 미스 잉글랜드 – 마가렛 로우(Margaret Rowe):
“밤에 머리를 손질할 뿐이다.”
▲ 미스 노르웨이
• 미스 노르웨이 – 솔베이그 보르스타드(Solveig Borstad):
“다량의 우유를 마신다.”
▲ 미스 실론
• 미스 실론(스리랑카) – 모린 힝거트(Maureen Hingert):
“알콜성 음료를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 미스 레바논
• 미스 레바논 – 한야 베이둔(Hanya Beydoun):
“과일을 많이 먹는다.”
▲ 미스 프랑스, 미스 잉글랜드
• 미스 프랑스 – 끌로드 페티(Claude Petit):
“비누와 물 이외에 사용하는 것이 없다.”
▲ 미스 필리핀
• 미스 필리핀 – 이본느 레이예스(Yvonne Berenguer de los Reyes):
“립스틱을 사용할 뿐이다.”
▲ 미스 멕시코, 일본, 한국, 칠레
• 미스 칠레 – 로사 메를로 카탈란(Rosa Merello Catalán):
“밤에는 크림, 낮에는 비누나 물을 사용한다.”
▲ 미스 엘살바도르
• 미스 엘살바도르 – 마리벨 아리에타 갈베즈(Maribel Arrieta Gálvez):
“수면이 가장 중요하다.”
▲ 미스 이탈리아(가운데)
• 미스 이탈리아 – 엘레나 판세라(Elena Fancera):
“비누를 쓰고 스파게티를 많이 섭취한다.”
▲ 미스코리아 김미정(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미스코리아 – 김미정(金美貞):
“항상 댄스를 즐기며 특히 맘보를 좋아한다.”
▲ 미스 브라질
• 미스 브라질 – 에밀리아 리마(Emília Barreto Correia Lima):
“다량의 비누와 물 그리고 해변에서의 일광욕.”
▲ 미스 일본
• 미스 일본 – 타카하시 게이코(高橋敬緯子):
“소량의 화장품을 사용한다.”
대회 결과는 스웨덴의 힐레비 롬빈(Hillevi Rombin)이 미스 유니버스로 선정되었고, 김미정은 아쉽게 결선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 입상한 5인
우승: 스웨덴 – 힐레비 롬빈(Hillevi Rombin)
2위: 엘살바도르 – 마리벨 아리에타 갈베즈(Maribel Arrieta Gálvez)
3위: 실론(스리랑카) – 모린 힝거트(Maureen Hingert)
4위: 독일 – 마르기트 뉭케(Margit Nunke)
5위: 일본 – 타카하시 게이코(高橋敬緯子)
국내에서 논란이 된 미스코리아의 인터뷰
인터뷰 속에서 각국 대표들이 대부분 ‘일상적인 관리만 할 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의 진부한 대답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 한국 대표의 답변이 독특하다.
“항상 댄스를 즐기며 특히 맘보를 좋아합니다.”
전쟁에서 막 벗어난 1955년의 한국은 1인당 GDP 64달러(CEIC)에 불과한, 참가국 중 최빈국이었다. 당연히 ‘댄스’와 같은 취미가 일상적인 활동일 수가 없었고, ‘맘보’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많았을 시기.
그런 이유로 김미정의 인터뷰는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작위적인 대답‘으로 비추어졌는지 국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애써서 즐겼을 댄스
제각기 모국의 미인대표로 선발되어 세계미인대회에 참가한 미의 사절들이 각기의 미용 비법을 피력한 가운데 『댄스를 즐기며 특히 맘보를 좋아한다』고 한 우리 미스코리아 김미정 양의 기이한 발언은 하나의 얘깃거리로 허허 웃어 넘기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못한 진수법(珍手法).
신체의 균정미(均整美)를 다듬어 올리는데 가장 손쉽고 즐거운 운동(?)이라는 일견 그럴싸한 이치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자가 비법을 말하는 타국 여성에게는 이와 비슷한 방법조차 없었음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걸어 다니는 정도로 댄스가 일과인 저들이기에 댄스쯤으로는 효용이 안된다는 궤변은 차마 농(弄)할 수 없겠지.
저마다의 미용법에 자유는 마땅히 허용되어야 하겠으나 그렇다면 세수하는 정도로 댄스를 애써 즐겼어야 할 것이니, 맙소사 이나라 대표 미인의 망상을 어떻게 치료하나?
【동아일보 1955.07.26】
위 기사를 요약하자면 ‘미스코리아가 과장된 억지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미용법을 말한 타국 대표와는 달리 댄스와 같은 취미를 말한 것에 대해 ‘김미정은 세수하듯이 댄스를 자주 즐기느냐?’라는 비판을 가한 것.
하지만 그녀의 이력을 보면 사실 이 인터뷰는 거짓도, 과장도 아니었다.
연예인이었던 미스코리아 김미정
1934년 5월 31일 생인 김미정(金美貞)은 본명 김영자(金泳子)로 1949년 반도가극단(半島歌劇團)에 입단해 8사단 정훈공작대(군예대·軍藝隊) 소속으로 6.25 전쟁 당시 최전방을 누비며 위문공연을 하던 종군 연예인이었다.
▲ 피난민을 대상으로 위문공연중인 김미정(가운데). 흰옷을 입고 춤추는 여성은 김시스터즈의 김애자
즉 그녀가 ‘매일 댄스를 즐긴다’고 인터뷰한 것은 사실이었고, 심지어 미모를 위해 즐기는 정도의 취미가 아닌 직업이었던 것이다.
당시 대회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보면 ‘김미정이 대회에서 탈락했음에도 준비해 간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춰서 박수갈채를 받았다’(동아일보 1955.07.24)라는 내용이 있다.
▲ 참가자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김미정
보통의 경우라면 동양에서 온 최빈국의 참가자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을 터. 당당함을 넘어 탈락을 하고도 기죽지 않고 춤을 추는 넉살은 생과사를 넘나드는 전방을 오가며 무대 활동을 했던 전투(?)연예인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 참전연예인협회 관계자들. 가운데가 김미정 여사 【중앙일보 2016.06.21】
미스유니버스 대회가 끝난 후 영화에도 출연했던 김미정은 1960년대 초반에는 하와이로 건너가 모델로 활동하며 연예인으로의 삶을 계속 살았다. 이후 1969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녀는 1978년 유명가수 현인(玄仁, 1919~2002)과 결혼하였으며 한국참전예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 미스·코리어 八日壯途에 (1955.07.14)
• 동아일보. 알고보니 別無神通, 미스各國美容秘訣 (1955.07.22)
• 동아일보. 애써서 즐겼을땐스 (1955.07.26)
• 世界의 尖端가는 大韓의美容秘訣 (195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