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배우 ‘마릴린 먼로’는 한국을 두번 방문했을까
‘20세기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가 전성기 시절이었던 1954년, 신혼여행지였던 일본에 이어 한국을 방문해 주한미군 앞에서 위문공연을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 관련 글: 마릴린 먼로의 일본 신혼여행과 방한
그런데 최근 ‘마릴린 먼로가 1954년에 앞서 6.25 전쟁(한국전쟁)중에도 위문공연차 한국에 왔었다‘는 주장을 접하게 되었다. 주장하는 사람은 뉴스로 보도된 것이라며 확신을 했는데 사실이라면 마릴린 먼로의 방한은 총 두 차례가 되는 것.
해당 이야기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2009년에 창간한 ‘천지일보‘라는 언론사의 기사였다.
– [단독] 마릴린 먼로 친필 사인 들어간 내한사진 최초 공개… 6.25 전후 두 차례 내한 (천지일보 2015.06.25)
– [단독] 원조 군통령 ‘마릴린 먼로’ 미공개 내한사진… 이면에 ‘이혼의 아픔’ 담겨 (천지일보 2016.06.20)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사는 오보이며, 마릴린 먼로의 1950년 방한은 없었다.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방한기록
문제의 기사를 세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먼로는 전쟁이 발발한 1950년 혹은 1951년에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을 방문했다.
• 먼로의 1950년 방한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무명배우였기 때문.
• 자료출처는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의 수집품.
기사는 ‘먼로의 1950년 방한‘을 팩트로 놓고 쓰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추론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다.
▲ 문제의 기사일부. 이 주장처럼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방한을 하지 않았다.
마릴린 먼로는 1950~1951년경 슈퍼스타만 아니었을 뿐 일주일에 수천통의 팬레터가 답지하는 떠오르는 신인이었다.
1951년에는 미 국방부 일간지였던 성조기(Stars and Stripes)에서 6.25 전쟁 참전군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미스 치즈케이크‘선발대회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우승하기도 했다. 기사에서처럼 최전선으로 위문공연을 가는데도 주목받지 못할 정도의 무명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 1952 ‘미스 치즈케이크’로 선정된 마릴린 먼로
또한 해외복무 미군들을 위한 위문공연은 미국위문협회(USO) 라이선스를 발급받으므로 당연히 기록이 남는다.
아무나 전쟁지역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무명이어서 묻혔다면 당연히 슈퍼스타가 된 후 언급했을 것이다. 특히 1954년의 전쟁이 끝난 후의 위문공연이 ‘인기 연예인의 희생정신‘으로 엄청나게 칭송받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전쟁 중 방한은 뒤늦게라도 더 큰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954년 방한 당시 수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먼로의 입에서 ‘이번이 두 번째 방한‘이라거나 ‘1950년의 위문공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그 이후로도 나온 적이 없다.
인천(?) 나이아가라 폭포
해당 언론사는 마릴린 먼로의 1950년 내한사진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인천에서 짐을 풀기 전 잠시 우아한 포즈로 기념 촬영한 모습‘이라는 주석을 달아두고 있다.
하지만 전 국토가 전쟁으로 초토화된 곳, 특히 주요 전장이었던 인천에 이렇게 잘 가꾸어진 포토존이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일까. 사진 속 마릴린 먼로의 뒤편으로 거대한 폭포가 보이는데, 바로 북미 최대의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의 모습이다. 그녀가 발을 걸치고 있는 철제 난간은 나이아가라폭포 주립공원에 현재도 그대로 남아있다.
▲ 당시와 변함없는 마릴린 먼로가 앉아있었던 난간(오른쪽)
즉 이 사진은 인천이 아니라 1953년 2월에 개봉한 영화 ‘나이아가라(Niagara)’ 촬영 현장의 모습이다.
▲ 나이아가라 폭포 난간의 모습과 동일한 의상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먼로(오른쪽)
당시 마릴린 먼로는 이 영화에서 로즈 루미스(Rose Loomis)역을 맡아 팜므파탈 연기를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으며, 사진 속의 푸른 정장도 촬영 중 입고 있던 복장이다.
그밖에 언론사가 주장하는 1950년 한국을 방문했던 사진 중 한 장이라는 ‘미군 장교와 걸어가는 마릴린 먼로‘도 1954년 방한 당시 강원도 춘천의 캠프 페이지(Camp Page)를 방문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다.
▲ 1954년 2월 19일, 춘천 캠프 페이지(Camp Page)의 마릴린 먼로
또한 ‘1954년 내한해 수많은 기자들 앞에 앉아있는 마릴린 먼로의 뒷모습‘이라는 사진도 신혼여행지였던 일본에 도착한 다음날인 1954년 2월 2일, 도쿄 제국호텔의 로비에서 일본기자들 앞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사실 그녀의 왼쪽에는 남편 조 디마지오(Joe DiMaggio, 1914~1999)가 앉아있었다. 두 사진을 비교해보면 의자의 패턴 무늬가 같고, 먼로가 오른손으로 모피 숄을 잡고 있는 것으로 동일한 장소와 순간임을 알 수 있다.
디마지오는 미리 계획된 일본프로야구팀과의 훈련 일정 때문에 먼로의 한국행에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한국이 아님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인터뷰를 하는 먼로와 디마지오
결과적으로 ‘마릴린 먼로 6.25 전쟁 중 방한‘은 잘못된 사진해석을 통해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을 사실처럼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