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스 아프가니스탄(Miss Afghanistan) 4인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이집트, 카자흐스탄, 터키, 인도네시아 등 비교적 세속적인 국가들은 국제미인대회에 참가해 미를 뽐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동의 이슬람 국가가 국제미인대회에 출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더군다나 미인대회가 그곳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데, 여성들의 인권이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다고 평가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놀랍게도 미인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아래에 나오는 4인의 미스 아프가니스탄의 존재는 그래도 이 나라가 원리주의자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서 그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시도했던 국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라 유섭 다우드(Zohra Yousuf Daoud)


아래에 나오는 4인의 미스 아프가니스탄의 존재는 그래도 이 나라가 원리주의자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서 그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시도했던 국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1
▲ 18세의 조라


조라 다우드
는 1954년 아프가니스탄 북부 마자르이샤리프 출생으로 1972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 쿠데타가 발생하기 직전에 열린 미스 아프가니스탄 대회에서 우승했다. 당시 아프간 전역에서 수백 명의 여성들이 참가했는데, 수영복 경연은 없었으며 학문적 지식이 뛰어나고 자신을 잘 표현한 다섯 명의 여성이 결선에 올랐다.

 

이 대회 이후로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는 미인대회가 열린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역사상 유일무이한 미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식어로 각종 미디어에서 표현되는 인물이다.

 

아래에 나오는 4인의 미스 아프가니스탄의 존재는 그래도 이 나라가 원리주의자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서 그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시도했던 국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3
▲ 미스 아프간 우승 당시


조라의 부친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최초의 아프간 사람으로 외과의사였다. 어머니 역시 부유층 출신이어서 수많은 가정부와 개인 요리사를 둔 집에서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권층이었던 그녀는 미인대회에 출전하지 않고도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지만 자신이 이 대회에 출전한다면 아프간 소녀들을 교육과 계몽으로 이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 라디오와 TV에서 경력을 쌓으며 유명인으로 활동하던 조라는 부친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비행기 조종사 모하마드 다우드와 결혼했다. 부부에게는 행복한 미래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일상은 무참히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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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라의 현재 모습


어린 시절부터 미국 문화에 익숙했던 조라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결국 이듬해에 가족들과 독일로 탈출했다.

 

고국을 탈출한 지 6개월 만에 미국 뉴욕으로 간 조라는 더 이상 특권층이 아니었다. 그녀가 카불대학교에서 받은 프랑스 문학박사 학위는 언어의 장벽 앞에서 큰 쓸모가 없었고, 겨우 리치먼드에 있는 프랑스 제과점에 취직할 수 있는 정도의 도움이 되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도로 훈련된 비행기 조종사였지만 그는 맥도널드에 취직했고 이후 택시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영어만 부족한 고급인력이었기에 영어 습득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남편은 유나이티드 항공의 조종사로 복귀했다. 부부가 성공적으로 미국에 정착하면서 나머지 가족들도 모두 미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현재 조라는 언론인으로서 아프간계 미국인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소리’ 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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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라의 남편 모하마드 다우드 술탄조이는 탈레반 축출 후 카불 시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비다 사마드자이(Vida Samadz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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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HM 매거진 2013에 등장했을 당시의 모습

 

1978년 2월 22일 카불 출생인 비다 사마드자이는 1996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졸업한 그녀는 이후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을 위한 단체를 미국에서 설립하는 운동을 주도하는 활동을 하였고, 2003년 11월 세계 4대 미인대회 중 하나인 미스 어스(Miss Earth)에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는 최초로 출전했다.

 

 나머지 메이저 미인대회인 미스 유니버스, 미스월드, 미스 인터내셔널에 아프가니스탄은 출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유일하게 국제 미인대회(군소 대회 제외)에 출전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비다 사마드자이가 빨간색 비키니를 입은 모습으로 무대에서 워킹을 하는 모습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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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미스 어스 수영복 경연


특히 아프간 대법원까지 나서서 “비다 사마드자이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기 바란다”며 “여성의 신체를 전시하는 것은 샤리아법과 아프간 문화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가했다. 또한 고국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녀가 기소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았지만 구체적인 혐의는 어떤 것인지 발표하지 않으며 세계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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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계에서 활동 중


비다 사마드자이는 미스어스 파이널 무대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특별상인 ‘대의명분 미녀상(Beauty for a Cause)’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2011년 인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Bigg Boss에도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예활동을 하였다.

 

잘라스히트 사다트(Zallascht Sad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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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2009 미스 아프가니스탄


1986년 4월 12일 카불에서 출생한 잘라스히트 사다트는 2008-2009 미스 아프가니스탄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불안정한 내정으로 인해 자국에서는 열리지 못했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렸다. 어쨌든 1972년 조라 다우드 이후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미스 아프가니스탄이 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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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 도이칠란드 우승 당시


2010년에는 미스 도이칠란드(Miss Deutschland : Miss Germany와는 다른 군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12년에는 세계미용기구에서 주관하는 Miss Globe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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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로 활동하는 모습


이후 아프간 여성들과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잘라스히트 사다트 아프가니스탄 재단(Zallascht Sadat Afghanistan Foundation)’을 설립하였고 독일과 카타르를 오가며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바하리 이바닷(Bahari Ibaadat)


아래에 나오는 4인의 미스 아프가니스탄의 존재는 그래도 이 나라가 원리주의자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서 그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시도했던 국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21


1993년 3월 21일생인 바하리 이바닷은 2014년 미스 아프가니스탄에 올랐다.

 

카불에서 태어나 파키스탄에서 자랐으며 10세 때 가족이 미국 워싱턴으로 이주했다. 2014년의 미스 아프가니스탄 대회 역시 현지의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두바이에서 개최되었고 이후 더 이상 미인대회가 열리지 않으며 현재까지 마지막 미스 아프가니스탄으로 언급되고 있다.

 

아래에 나오는 4인의 미스 아프가니스탄의 존재는 그래도 이 나라가 원리주의자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서 그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시도했던 국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23
▲ 미스 워싱턴에 출전한 모습


바하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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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슈퍼탤런트 오브 더 월드 당시 무대


그녀는 2014년 12월 19일 서울 세빛둥둥섬에서 열린 미스 아시아 퍼시픽 슈퍼탤런트 오브 더 월드(Miss Asia Pacific Supertalent of the World)에 참가해 7위를 차지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도 모델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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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서울에서 합숙 중인 모습


가장 처음에 등장한 조라 다우드 외에는 모두 해외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고, 국적도 아프가니스탄이 아니기 때문에 조라 만을 ‘역사상 유일무이한 미스 아프가니스탄’으로 칭하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이 워낙 불안정한 상황이고 종교적인 제약이 있는 것을 감안해 ‘바하리 이바닷을 마지막 미스 아프가니스탄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는 관점도 있다.

 

 이 외에도 1990년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미인대회가 열렸다는 자료가 있으나 해당 자료 확인해보면 미인대회라고 하기에는 참가자들의 아마추어 같은 면모나 국제기준과는 동떨어진 대회 형식으로 인해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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