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㉟ 1913년, 말이 끄는 자동차
20세기 초, 자동차를 끄는 말의 사진.
자동차는 내연기관으로 운행하는 ‘말이 필요 없는 마차‘임에도 해괴하게 말로 자동차를 끌고 가는 모습이다. 한창 자동차가 말의 역할을 대체하던 시기였던 만큼 ‘세기의 전환기‘를 보도하고자 의도적으로 설정한 포토저널리즘일까.
이 사진이 촬영된 곳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남동부에서 50km 떨어진 난터켓 섬(Nantucket)으로 19세기 중반까지 포경이 주요산업이었으나, 남북전쟁(1861~1865)으로 포경선이 모두 파괴되면서 경제적인 침체를 겪게 되었다.
▲ 위성에서 본 난터켓 섬
이로 인해 1840년에 인구가 9,000명에 달했던 난터켓 섬은 1900년경 3,000명으로 주민이 급감하면서 미개발 지역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때까지도 섬을 떠나지 않은 주민들은 극도로 변화를 거부하는 성향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폴저의 투쟁
전통을 고수하는 난터켓 섬의 주민들은 현대적 문물인 자동차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08년,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섬주민들의 압력에 따라 관광객이 찾는 시기인 5월부터 9월까지 섬에서 자동차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하지만 1913년, 의류사업자인 클린턴 폴저(Clinton S. Folger)가 난터켓섬에서 우편물 배달사업을 계약하고 차량을 구입하면서 변화의 기류가 시작되었다. 바로 사진 속 운전석에 앉아있는 인물이다.
▲ 클린턴 폴저(Clinton S. Folger)
그가 차를 가지고 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불안감이 커진 일부 섬주민들은 일 년 내내 자동차를 금지하는 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기 시작했다.
▲ 1913년 11월 2일, 자동차 출입을 금지하는 명령문을 부두에 붙이는 난터켓 행정부 위원들
2주 후 증기선 산카티(Sankaty)에 탄 폴저와 그의 자동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기 위해 부두에 섬주민들이 잔뜩 모였다. 차가 경사로를 천천히 내려오는 가운데 경찰이 그를 체포하기를 바라는 주민들도 있었고, 자동차의 등장에 환호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첫날, 클린턴 폴저는 첫 번째 우편물 배달을 위해 섬의 동쪽 마을인 시아스콘셋(Siasconset)으로 평화롭게 차를 몰았다.
▲ 시아스콘셋의 오래된 우체국 건물(2009)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한 섬 행정부의 위원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였고, 자동차 허용 여부를 둘러싼 격론이 오고 갔다.
클린턴 폴저는 이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말을 차에 묶고 달리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했고, 이 ‘말 자동차‘는 전국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곳에서 벌이는 폴저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 100년 전의 모습이 보존된 난터켓 시내
이후 폴저는 수차례 법원에 출두하였고,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벌금형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자동차는 은밀하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응급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의사들은 폴저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으며, 급한 일로 시내로 나가야 할 일이 있는 주민들의 택시 역할도 해주었던 것이다.
▲ 시아스콘셋의 오래된 주택가를 지나는 관광객들. 가장 오래된 집은 16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WSJ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금지령은 완고한 주민들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고 번번이 법안 철폐에 실패했다.
분명 자동차의 덕을 본 주민이 있었을 것임에도, 관습의 힘으로 인해 1918년까지 난터켓섬은 매사추세츠 주에서 자동차를 허용하지 않은 최후의 마을로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