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한국 최초의 FIFA 월드컵 참가 모습
1954년 6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린 제5회 스위스 월드컵에 한국은 자국으로서도 첫 출전이자 아시아 독립국 최초의 월드컵 본선 출전국으로 참가하였다.
역사상 최초의 본선 무대를 밟기 위한 아시아예선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중국이 출전을 포기하면서 아시아에 걸린 한 장의 티켓을 차지하기 위해 홈과 원정을 오가는 한일전이 성립되었는데, 일본대표팀의 입국을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2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러지게 된 것이었다.
▲ 1954 월드컵 아시아예선 출선 선수들.
(위) 정상희 단장, 이유형 감독, 박규정, 홍덕영, 이종갑, 이상의, 김지성.
(아래) 민병대, 강창기, 최광석, 정남식, 최정민, 성낙운, 박일갑.
▲ 1954년 3월 7일, 도쿄 메이지 신궁 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예선 1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하는 최정민(崔貞敏, 1930~1983).
한국은 선제 실점을 허용했지만 다섯 골을 넣으며 5:1로 역전했고, 2차전도 2:2로 무승부를 거두며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당시는 현재처럼 합계 스코어 규정이 없었기에 2차전을 패하면 3차전을 해야 했기에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 1954년 3월 14일, 라디오로 생중계된 한일전을 듣기 위해 시민들이 ‘국제소리사’ 앞에 모여있다.
▲ 1954년 3월 23일 아침 8시 45분,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고 서울역에 도착한 한국 선수단은 엄청난 인파에 휩싸였다. 선수들은 카퍼레이드를 하며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경무대로 향했다.
원정에서 두 경기를 치르는 가운데서도 한국 선수들은 투지를 발휘하며 본선 티켓을 쟁취했지만 이후 세계무대에 나선 한국팀의 여정은 더욱 험난했다.
▲ 스위스로 출국하는 한국대표팀의 기념사진.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세계 최빈국으로 서울에서 스위스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미 공군의 도움을 받아 두 차례 나누어 여러 곳을 경유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특히 두 번째 비행기는 월드컵 개막전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도착했고, 이는 시차 적응을 할 여유도 없는 상황을 뜻했다.
1954년 6월 17일, 취리히 하드투름(Hardturm)에서 강호 헝가리와 맞닥뜨린 한국은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ás)에게 2골을 얻어맞으며 0:9로 패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월드컵 최다 점수차 패배로 기록되어있는 참패였다.
▲ 그라운드에 입장하는 한국과 헝가리 대표팀.
▲ 악수를 나누는 헝가리의 주장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ás, 1927~2006)와 한국의 주장 민병대(閔丙大, 1918~1983). 열흘 후면 한국은 휴전협정 1주년을 맞이하는 전쟁 직후의 국가였다.
▲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애국가를 부르는 한국대표팀. 왼쪽부터 감독 김용식(金容植, 1910~1985), 주장 민병대(閔丙大, 1918~1983), 골키퍼 홍덕영(洪德泳, 1926~2005). 김용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선수로 참가하였다.
▲ 전반 12분, 페렌츠 푸스카스가 선제골을 성공시키는 모습. 한국의 월드컵 첫 실점이었다.
▲ 헝가리 공격수를 수비하는 한국팀. 유니폼에 천을 대고 꿰맨 등번호의 모습이 한국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 9골의 최다 점수차는 유고슬라비아가 1974년 월드컵에서 자이르에 9-0으로 승리하고, 헝가리가 1982년 월드컵에서 엘살바도르에 10-1로 승리하면서 공동 기록으로 남아있다.
한국의 경기는 처절했다. 4명의 선수가 탈진해서 그라운드 밖으로 나갔고 결국 7명이 남았다. 축구 규정상 6명이 되면 몰수패가 되는 것이었으므로 한국 선수들은 역사적인 월드컵 첫 경기를 몰수패로 남기지 않겠다는 정신력을 발휘하며 명예로운 패배를 택했다.
▲ 한 시즌 동안 가장 멋진 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하는 FIFA 푸스카스상(The FIFA Puskas Award)은 페렌츠 푸스카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푸스카스의 나라 헝가리에게 9:0으로 패했던 한국의 선수가 2020년, 이 상을 차지하는 놀라운 역사가 쓰였다.
뒤이어 6월 20일, 제네바에서 열린 터키와의 2차전에서도 7골을 내주며 한국은 0:7로 패하였다. 이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스코틀랜드, 체코슬로바키아 3개국이었다.
▲ 1954년 6월 20일, 경기를 앞둔 터키와 한국.
▲ 경기전 악수를 나누는 터키 주장 투르가이 세렌(Turgay Şeren, 1932~2016)과 한국 주장 박규정(朴奎禎, 1915~2000).
▲ 신체조건이 뛰어난 터키 공격수를 상대하는 한국팀의 처절한 수비.
▲ 실점을 허용하는 골키퍼 홍덕영. 한국은 2경기 16점을 내주면서 대회 최다실점팀에 올랐다.
위대한 과정을 거쳐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 본선에서 한골도 넣지 못하고 패퇴한 한국이 다시 월드컵에 참가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32년 만에 돌아온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박창선이 감격적인 첫 골을 기록하였고, 이후에 열린 월드컵은 모두 개근하는 것을 넘어 조금씩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으며 도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