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 카라차이 호수
카라차이 호수(Lake Karachay)는 러시아 서부 우랄산맥 남쪽의 첼랴빈스크 주에 위치한 작은 저수지로, 죽음의 호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름은 호수이지만 늪지 형태에 더 가까운 곳)
이곳은 1951년부터 구(舊)소련 핵무기 프로그램의 일환 중에 방사성 폐기물 투기지역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소련은 플루토늄을 생산하던 재처리 공장이자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 시설인 마야크(Mayak) 재처리 공장의 폐기물들을 인근 테챠(Techa)강으로 투기하면서 이 강의 하구에 위치한 카라차이 호수로 폐기물들이 축척되기 시작하였다.
▲ 마야크 재처리 공장
마야크 재처리 공장은 1957년도에 있었던 키시팀 사고로도 잘 알려져 있다.
키시팀 사고(Kyshtym disaster)
1957년 11월 29일, 마야크 재처리 시설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던 탱크의 냉각장치가 고장나 TNT 75톤 정도의 비핵 폭발을 일으켰다. 2백만 퀴리의 방사성 물질이 38850km²를 오염시켰고, 이로 인해서 최소 2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1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났으며, 47만 명이 피폭을 당했다.
이 사고는 소련에서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최악의 원자력 사고였으며,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에서 6단계의 재앙으로 기록되었다.
▲ 국제원자력사고등급
사고 당시에는 오조르스크가 마야크 재처리공장 가동으로 인해 폐쇄된 도시였기에, 근처의 다른 도시인 키시팀의 이름을 따서 ‘키시팀 사고(Kyshtym disaster)’라고 칭했다.
▲ 키시팀 사고로 오염된 지역
마야크 재처리 공장과 관련된 사고는 이 키시팀 사고와 카라차이 호수와 관련된 사고 2건을 포함, 총 3건이다. 이후 카라차이 호수에 집중호우가 내려 방사성 폐기물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으며, 1967년의 가뭄으로 호수 바닥의 폐기물이 확산된 사고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조르스크 시의 사고를 두고 ‘냉각장치의 고장이다 VS 폐기로 인한 누출이다’로 논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사고가 1건이 아니었기에 사실 둘 다 맞는 주장인 것이다.
또, 첼라빈스크 시와 첼라빈스크 주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고가 일어난 곳은 첼라빈스크 주의 오조르스크 시(사고 당시 이름은 첼랴빈스크-40)이기 때문에 현재의 첼랴빈스크 시와는 상관 없는 곳이다.
▲ 오조르스크시는 첼라빈스크 주에 속해 있으며, 첼라빈스크 시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마야크 재처리 공장이 있던 곳은 처음엔 ‘첼랴빈스크 -40’으로 불렸으며, 이후 ‘첼랴빈스크 -65’로 불리게 되었으며 1994년에 오조르스크 시가 되었다. 명칭이 변경되면서 일어난 혼동인 것이다.
세계 최악의 오염지역
미국 워싱턴 DC의 연구소에 따르면, 카라차이 호수는 세계 최악의 오염된 지역으로 호수의 방사능 물질은 4.44 엑사베크렐(E㏃)에 달한다. 특히 이 중에는 3.6 E㏃의 세슘-137과 0.74 E㏃의 스트론튬-90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5 ~ 12 E㏃인 체르노빌 참사보다는 적은 양이지만 체르노빌은 광범위한 지역의 오염인 반면에, 이곳은 작은 지역에 집중된 것임을 감안하면 실로 그 수치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 마야크 재처리 시설의 인공위성 사진
방사능 폐기물이 직접 투입된 지점과 그 근처의 방사성 수위는 1990년 기준으로 시간 당 600뢴트겐. 이것은 호수의 해변에서는 5분, 근처에서는 1시간만 노출되어도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1967년에 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면서 호수에 잠들어있던 폐기물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지역에 부는 강풍의 영향으로 25만 km²에 걸쳐 방사성 분진을 확산시켰다. 테챠(Techa)강 유역근처에 사는 사람들운 지난 45년 간 체르노빌 방사능 사고의 20배에 달하는 50만 명이 185 페타베크렐의 방사능에 피폭되었다.
▲ 카라차이 호수
이에 소련은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호수에 속이 빈 콘크리트 블록과 바위를 투입하고 주변에 토양을 축적시키는 등 방사능의 확산을 막는 임시방편을 취하게 된다.
또, 1968년 이 곳을 동우랄 자연보호 지역으로 위장지정하여 오염된 지역에 사람의 접근을 금지시키는 등 보안에 철저했지만, 당시 서방에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소련 정부가 사고 지역에서 생태계에 방사능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것을 보면서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챈 것.
정보자유법에 의해 공개된 당시 CIA 보고서에 의하면, CIA에서는 1957년의 키시팀 사고를 알고 있었지만, 당시 집중 육성중이던 미국의 원자력사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밀로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 오조르스크 시의 현재 모습
현재 오조르스크 시의 방사능 수치는 사람이 살기에 안전한 정도까지 내려갔지만, 카라차이 호수는 여전히 접근이 금지되고 있다.
테챠(Techa)강 유역의 방사능 수치 역시 정상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어떤 지역은 여전히 자연 상태의 50배에 달하는 수치가 기록되고 있는데, 과학자들에 따르면 일반 생선의 100배 방사능에 노출된 생선의 포획이 보고되기도 하였다.
▲ 테챠 강에서 잡힌 물고기
당시 이 곳에 살았던 거주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방사성 폐기물의 투기가 이루어지는 동안에 강물은 더럽지도 않고 평소와 전혀 다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테챠 강에서 떠오른 죽은 물고기를 신나게 잡아 장에 내다 팔고 손쉽게 돈을 벌어 들였지만, 아무도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색무취의 오염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떠나게 될 때 즈음엔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
▲ 테챠 강 유역에서의 희생자 유족들의 모임
카라차이 호수 외에도 첼랴빈스크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세메이(과거 세미팔라틴스크)에는 소련의 핵실험장이 있었는데, 1949년부터 소련의 붕괴로 독립하기 직전인 1989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456회의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116건의 지상 및 지표 핵실험과 340건의 지하 핵실험 포함)
이 곳 역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의 5천 회 분에 해당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으며, 심지어 실험 당시 주민소개령이 없어서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피폭되었고, 그 숫자는 24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어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염색체 이상과 백혈병이 타 지역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발견되고 있어서 UN 등의 국제적 지원과 카자흐스탄 정부의 지속적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 한국 국립암센터도 물적, 인적, 교육적 자원을 지원하기 위해 세메이의 병원과 협약을 체결
또, 세메이(Semey)에서 조금 떨어진 자르켄트(Zharkent)에서도 1980년 이후로 백혈병과 기형아의 출생률이 늘기 시작했는데, 역학조사 결과 중국의 로프노르 핵 실험장과 연관이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자르켄트는 중국의 국경과 가까이 위치하여 있으며 텐산 산맥을 경계로 타클라마칸 사막이 위치한 곳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사막에 위치한 로프노르 핵실험장에서는 30여 년 간 48회의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 자르켄트(Zharkent) 위치
이처럼 인류 역사의 핵전쟁은 일본 핵투하의 막대한 피해를 교훈삼아 군비 경쟁에만 그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냉전시대를 거치며 이미 여러 차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무고한 사람들 수십 만의 죽음을 앗아갔고 그 후유증은 수백 만 명에게 현재도 진행형이며, 무엇보다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식민지에서 수십 차례의 핵실험을 하는 것은 핵무기를 직접 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