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3제국의 룸살롱, 살롱 키티(Salon Kitty)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살롱 키티를 첩보수집 목적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가 입안하여 기획하였고, SD의 수장인 발터 셸렌베르크(Walter Schellenberg)에게 전체적인 운영과 관리를 맡겼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1
▲ 살롱 키티의 현재 모습


업소명 살롱 키티는 룸살롱의 마담이었던 키티 슈미트(Kitty Schmidt)의 이름을 따서 작명한 것이다.
밤 업계의 실력자 키티 슈미트는 나치 집권 이후 독일을 떠나는 난민을 통해 영국 은행에 돈을 예치하고 있었다. 제3제국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슈미트는 마르크화의 해외유출을 통해 독일을 떠날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도피의 기회를 엿보던 키티 슈미트는 서구 열강과 독일 간 긴장상태가 조성되자 1939년 6월, 드디어 해외 도피를 결심한다. 그러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보안방첩부 요원에 의해 네덜란드 국경 인근에서 체포당하고, 슈미트는 게슈타포 본부로 압송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었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3
▲ 코코 샤넬(우)과도 염문을 뿌렸던 플레이보이 발터 셸렌베르크


취조실에서 발터 셸렌베르크는 슈미트에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한다.

 

‘수용소냐 협력이냐.’

 

슈미트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였고, 이것이 살롱 키티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5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하이드리히는 야심가였다. 보안방첩부와 게슈타포를 통합 운영하는 제국보안 본부장이 된 후 점령지 총독 자리까지 권력을 확대하고자 했던 하이드리히에게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하나는 해군 장교 시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군복을 벗었던 일이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횡령, 혼빙, 성폭행 등등 여러 의혹이 난무하지만, 하이드리히가 제국 보안본부(RSHA) 장이 되면서 관련 기록을 말소시켰기 때문에 아무도 구체적인 진상은 알 수 없게 되었다.
 
당시 군법재판 재판관이었던 에리히 라에더(Erich Johann Albert Raeder) 제독과 군사정보국 빌헬름 카나리스(Wilhelm Franz Canaris) 제독은 실상을 알고 있었지만, 제3제국 정보기관 내 알력으로 인해 끝내 증언되지는 않았다.

 

또 하나는 하이드리히의 조모가 유태인이라는 설이었다. 친위대. 게다가 제국보안 본부장에게 유태인의 피가 흐른다는 설은 그것이 낭설이라 하더라도 대단히 치명적일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제3제국의 정보기관은 크게 두 가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국방군에서 운영하던 군사정보국 아프베어(Abwehr)와 친위대 산하의 제국 보안본부(RSHA)였다.


두 기관은 국가의 정보와 관련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팽팽한 파워게임을 지속하고 있었다.
해군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군사정보국과 해군 출신 하이드리히가 이끄는 친위대의 정보기관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부의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상태였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7
에리히 라에더(좌), 빌헬름 카나리스(우)


하이드리히와 카나리스는 해군시절 상관과 부하의 관계였으나, 하이드리히가 친위대에 입대한 후로는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갖게 되었고, 하이드리히가 이끄는 친위대(SS) 산하 정보기관 제국 보안본부(RSHA)와 카나리스가 이끄는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 아프베어(Abwehr)는 제3제국 정보기관의 라이벌이었다.

 

군사정보국의 카나리스는 하이드리히의 개인적인 약점을 쥐고 있었고, 하이드리히는 군사정보국이 연합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반역 음모의 증거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긴장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었고, 이 같은 상황은 군사정보국의 실세들이 제거되는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까지 계속되었다.

 

제국 보안본부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국내외의 정보를 취득하고 있었지만, 고위층의 사생활과 관련된 첩보 또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또한, 하이드리히는 자신의 약점을 보호하고, 경쟁자를 견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밤의 세계에서만 수집이 가능한 고급 정보. 이것이 살롱 키티 존재의 목적이었다.

 

보안방첩부는 룸 도처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이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지하실에 녹음시설과 기록실을 완비하였다. 그리고 베를린 각지의 유명한 ‘아가씨’들이 선발되어 첩보 여부 선별능력에 대한 교육 및 군복, 계급장, 관등성명 식별 트레이닝이 행해졌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9


훈련된 미녀들은 고객을 접대한 후에 일정 양식의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다.
물론 그들은 도청장치와 지하실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1940년 3월, ‘미녀 첩보국’ 살롱 키티가 개장하였고 외교관과 군 관계자, 고위 관료를 주 고객으로 본격적인 첩보활동이 시작되었다. 베를린 최고의 미녀 20명이 대기하는 제국 최고의 업소, 살롱 키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11
틴토 브라스 감독의 영화 ‘살롱 키티(1975)’


무솔리니의 사위인 갈레아노 치아노(Galeazzo Ciano)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독일 방문 시마다 들렀고, 밝히기로 소문난 무장친위대(Waffen-SS) 사령관 제프 디트리히(Josepp “Sepp” Dietrich), 문화계 인사들과의 술접대가 잦았던 국민계몽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등이 주 고객이었다.

 

(*치아노는 이전부터 국가사회주의적 인간형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되던 요주의 인물이었고 실제로 전쟁 말기에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13
단골손님 3인방


그러나, 살롱 키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미녀들의 미모가 너무 눈부셔서 그랬는지 업소에 찾아온 주요 인사들은 첩보가 될만한 비즈니스 발언은 거의  하지 않았고, 그저 미녀들과 데이트만 즐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실제로 엄청난 분량의 리포트가 작성되었지만, 첩보로써의 가치가 있던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15
살롱 키티 내부 모습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손님은 급감하였고, 설상가상으로 1942년 7월 연합군의 폭격을 맞기도 하였다.


발터 셸렌베르크는 1942년에 프로젝트 철수를 결정하였고, 비밀유지를 전제로 운영권은 키티 슈미트에게 이관되었다.
마담 키티 슈미트는 종전 후에도 첩보수집 목적의 살롱 키티와 관련된 일체의 증언을 거부하며 약속을 지키다 1954년 사망하였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17
키티 슈미트의 젊은 시절로 추정되는 사진


20명의 미녀들은 보안방첩부가 철수한 이후에도 업소를 떠나지 않았다.
살롱 키티의 기획자인 하이드리히는 체코 총독에 부임한 후, 1942년 6월 4일 영국의 사주를 받은 체코 테러리스트에 의해 사망하였다.

 

살롱 키티의 실질적인 관리자인 발터 셸렌베르크는 종전 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모든 전말을 증언하였다. 1949년 6년형을 받고 복역 중 1951년 질병으로 석방된 이듬해 3월 31일 암으로 사망하였다.

 

살롱 키티(Salon Kitty)는 제3제국 시절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 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 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19
말년의 키티 슈미트와 2대 마담인 그녀의 딸


살롱 키티는 키티 슈미트 사후에도 삼대에 걸쳐 운영되다가 1992년 문을 닫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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