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책, ‘Shadows from the Walls of Death’
‘가장 위험한 책’이라고 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라든가 끔찍한 기록을 담은 책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미국 미시간 대학교(MSU) 도서관에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책이 있다.
바로 남북전쟁 당시 연합군 측의 외과의사이자 훗날 미시간 주립 농과대학(현 MSU)의 화학교수였던 로버트 클락 켓지(Robert C. Kedzie) 박사가 1874년에 발간한 「죽음의 벽으로부터 드리운 그림자(Shadows from the Walls of Death)」
이 책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오래된 발간 연도에서 알 수 있듯이 ‘희귀하다는 것’과 ‘만지면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Shadows from the Walls of Death(1874)
화려한 벽지의 위험성
켓지 박사는 1870년대 미시간 주의 보건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판되고 있는 벽지의 위험성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했다.
그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어느 부모가 딸의 방을 리모델링 해준후로 딸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는 것. 딸을 데리고 병원을 가면 금방 나아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앓기를 반복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박사는 부모가 딸의 방에 새로 바른 벽지를 의심했고, 떼어낸 30cm x 30cm 정도 크기의 벽지에서 무려 2g의 비소를 확인했다. 이를 통해 그는 소녀가 앓는 병의 원인이 벽지에서 공기 중으로 흘러나오는 비소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 로버트 클락 켓지(1823~1902)
비소는 고대로부터 독약과 의약품으로 이용되었지만 19세기는 ‘비소의 세기‘라고 불릴 만큼 여러 산업에 사용되었다. 특히 비소를 함유한 페인트는 ‘저렴한 생산가 대비 선명한 색조’를 낼 수 있었기에 더욱 선호되었다.
사실 비소가 함유된 벽지는 켓지 박사에게 정체를 들키기 이전에도 가정과 기업체에서 중독사례가 늘어나면서 의료계와 일반인들의 의심을 사고 있었다. 나타나는 주요 증상은 메스꺼움, 두통, 설사, 관절통, 피부병 등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집이나 건물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졌다.
하지만 이런 증상들은 콜레라나 이질의 증상과도 비슷했기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게다가 벽지의 유해성을 강력하게 밝히는 것은 해당 산업의 높은 수익성을 포기함과 더불어 여러 사람의 일자리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주장들이 오가는 와중에 1860년대에 들어서며 비소가 함유된 벽지는 대유행을 타게 된다.
▲ 비소가 포함된 아름다운 벽지
비소가 들어간 밝은 색상은 특히 꽃을 주요 디자인으로 삼은 빅토리아 시대의 벽지에는 안성맞춤이었고, 구리와 혼합되어 가장 빛나는 녹색을 내는 셸레 그린(Scheele ‘s Green)이나 파리스 그린(Paris green)이 많이 사용되었다.
1860년에만 영국에서 셸레 그린 페인트가 700톤이 생산될 정도였으며 장난감, 사탕 포장지, 식용색소, 조화, 벽지 등 모든 가정용품에 안 쓰이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켓지 박사의 책을 통한 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 의학협회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생산되는 벽지의 65%에 비소가 함유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벽지 수동인쇄 공정(Les merveilles de l’industrie, vol. 2, 1873)
당시 비소 중독의 피해자는 벽지에 둘러싸인 방의 주인만이 아니었다. 비소 페인트를 생산하는 업체, 이를 벽지에 인쇄하는 노동자, 소비자 모두 중독의 위험에 내몰리고 있었다.
다행히 박사의 노력을 통해 대중들의 인식이 전환되면서 안전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촉발했고, 결국 제조업자들이 손을 들고 비소가 함유되지 않은 벽지만이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890년대에는 벽지로 인한 질병은 드물게 발생했고 이후 1900년대 초까지 비소는 살충제, 쥐약, 살균제, 목재 방부제등에만 사용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비소의 사용이 제한되면서 주어진 혜택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에게 ‘건강‘이라는 것으로 주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책의 발행
켓지 박사는 맹독이 가득한 벽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집안에 숨어있는 ‘은밀한 살인범’에 대해 경고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특별한 책 100부를 제작하여 미시간 전역의 도서관에 배포했다.
책은 당시 건물에 사용된 벽지들의 독성을 보고하는 내용으로 ‘시판되는 벽지의 안료에 비소가 함유되어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벽지에서 방출되는 비소로 인해 만성적인 질병에 걸리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가로 55.88cm x 세로 76.2cm의 크기에 총 10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짧은 서문들 속에 마치 문제가 된 벽지를 두고 말하는 듯한 레위기의 성경구절이 눈길을 끈다.
▲ 책 속 레위기 구절
– 제사장의 관찰 【레위기 14:37~42】
37 그 색점을 볼 때에 그 집 벽에 푸르거나 붉은 무늬의 색점이 있어 벽보다 우묵하면
38 제사장은 그 집 문으로 나와 그 집을 이레 동안 폐쇄하였다가
39 이레 만에 또 가서 살펴볼 것이요 그 색점이 벽에 퍼졌으면
40 그는 명령하여 색점 있는 돌을 빼내어 성 밖 부정한 곳에 버리게 하고
41 또 집 안 사방을 긁게 하고 그 긁은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에 쏟아 버리게 할 것이요
42 그들은 다른 돌로 그 돌을 대신하며 다른 흙으로 집에 바를지니라
문제는 박사의 의도가 좋았더라도 책 자체가 너무 위험했다는 점이다. 책은 14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86장은 켓지 박사가 직접 사들인 비소가 함유된 벽지견본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죽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들은 시민의 중독을 우려해 책을 대부분 폐기해버렸다.
현재 남아있는 죽음의 책
1874년에 제작된 100부의 책 중 현재는 5부만 남아있다. 미시간대학교(UM)와 미시간주립대학교(MSU)에 각각 한부가 있는데 플라스틱 커버로 캡슐 처리되어 독으로부터 안전하게 구경할 수 있다.
또 미시간 역사박물관에서도 한 권이 있는데 특수장갑을 끼고 제한된 시간 안에 열람할 수는 있었던 것이 1998년에 완전히 봉인 처리되었고, 현재는 보호덮개에 싸여 금고 내에 보관되어 있다.
하버드 대학교와 국립의학도서관(NLM)에도 한부씩 보관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책 전체가 디지털 스캔되어 온라인을 통해 열람이 가능하다.
▲ 방호복을 입고 책을 스캔하는 모습
국립의학도서관의 의학사(History of Medicine) 부서의 직원들은 실험실과 같은 환경에서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후드 아래에서 책을 스캔하는 작업을 거쳤다.
▲ Minter Welder로 밀봉 및 앨범처리
다만, 디지털로 스캔을 했다 하더라도 원본의 크기와 비소로 표현한 색상까지 완벽하게 모니터 너머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이에 직접 열람을 원하는 연구자를 위해 원본 페이지를 밀봉된 3mm 두께의 폴리에스테르 필름으로 캡슐 처리하여 독소로부터 안전하게 하였고, Minter Welder라는 장비로 봉인된 페이지들을 안전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앨범처럼 만들어 두었다.
▲ 안전하게 만들어진 ‘죽음의 책’
벽지 샘플의 색상은 켓지 박사가 막 발행했을 당시보다 다소 색이 바랬지만 국립의학도서관의 담당자들은 디지털로는 이 벽지의 매력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며 ‘충분히 직접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Reference:
– Shadows from the walls of death(NLM).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