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수난을 많이 겪는 동상, 덴마크 인어공주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 랑겔리니의 바위에서 항구를 떠나는 배들을 바라보며 다소곳이 앉아있는 인어공주상은 덴마크 국민들에게는 국보로 간주되는 동상이다.
끊임없이 크고 작은 테러를 당하는 것으로도 언론에 오르내리는데,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인물들의 동상이 테러를 당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지만 덴마크의 인어공주상은 그저 동화 속의 주인공일 뿐인데도 계속되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인어공주 동상의 제작
칼스버그 맥주의 창업자인 J. C. 야콥센의 아들이자 예술품 수집가였던 칼 야콥센(Carl Jacobsen)은 1909년 덴마크 왕립발레단이 시연한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야콥센은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Edvard Eriksen, 1876~1959)에게 인어공주 동상의 제작을 의뢰했고, 주인공 역할을 했던 발레리나 엘렌 프라이스(Ellen Juliette Collin Price de Plane, 1878~1968)에게 모델을 제안했다.
▲ 엘렌 프라이스의 초상화 | 악셀 허우(Axel Hou), 1938
엘렌 프라이스는 인어공주의 모델이 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동상이 나체로 계획됐다는 것을 알고 몸 모델이 되는 것은 거부했다. 1910년이라는 시대에 두 아이의 엄마인 32세 여성이 낯선 남자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것은 아무리 예술을 위해서라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결국 에릭센은 얼굴은 엘렌 프라이스, 몸은 아내인 엘리네 에릭센(Eline Eriksen, 1881~1963)을 모델로 하여 1912년 9월 14일 인어공주상을 완성했다.
▲ 조각가 에릭센 부부
의뢰자 야콥센은 완성된 인어공주상을 코펜하겐시에 기증하였고, 시당국은 공원과 공공장소를 고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로 장식하고자 하는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1913년 8월 23일에 동상을 해안가에 설치하였다.
이후 인어공주상은 지금까지 도시의 상징을 넘어 국가의 상징이 되었으며, 코펜하겐시는 매년 8월 23일을 동상의 생일로 기념하고 있다.
▲ 설치되는 인어공주상. 1913.8.23
인어공주 동상의 수난사
1913년 인어공주상이 설치되고 50여 년간은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졌으나 점차 활동가와 파괴범들의 표적이 되었다.
■ 1961년 9월 1일: 최초의 테러
▲ 인어공주 동상에 브래지어와 팬티가 페인트로 칠해졌다. 작품을 외설로 받아들인 누군가가 옷을 입힌 것으로 추정되었다.
■ 1963년 4월 28일: 페인트 테러
▲ 인어공주상은 누군가에 의해 머리와 가슴 부분이 빨간 페인트로 칠해졌다. 지난 100여 년간 페인트 테러는 동상이 겪은 가장 흔한 수난으로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 1964년 4월 24일: 최초의 참수
▲ 노년의 엘렌 프라이스
끔찍하게도 인어공주 동상이 야간에 누군가에 의해 쇠톱으로 참수되었고 잘린 머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2년 후 경찰은 위르겐 내쉬(Jørgen Nash)라는 예술가를 체포했다. 수차례 심문과 수색에도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였고,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며 기물파손과 도난으로 인한 징역 3년형을 피할 수 있었다.
▲ 위르겐 내쉬와 복원대기 중인 동상
33년 후인 1997년에야 내쉬는 회고록에서 범행을 고백했는데 경찰의 수사내용과 거의 일치했다고 한다. 다만 인어공주의 머리를 덴마크의 해안마을인 티스빌데(Tisvilde)에 숨겨놓았다고 했으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자랑스러운(?) 범행을 인증하지는 못했으며 내쉬는 2004년 세상을 떠났다.
■ 1973년: 정책요구
▲ 동일임금정책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플래카드를 내건 모습. 열거된 것들 중 이 정도는 온건한 시위이다.
■ 1984년 7월 22일: 팔을 자른 청소년들
▲ 술 취한 18세와 19세 소년이 동상의 오른팔을 잘랐다. 잘린 45cm가량의 팔은 이틀 후에 반환되었고 소년들은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 1990년 8월 5일: 참수 미수
두 번째 참수 시도가 발생했지만 미수로 끝났다. 범인들은 쇠톱질을 하다가 도주했고 동상의 목은 18cm가량 잘렸다.
■ 1998년 1월 6일: 두 번째 참수
▲ 급진여성운동파(RFF)라는 단체에 의해 두 번째로 머리가 잘려나갔다. 이들은 사진기자 미하엘 폴센(Michael Forsmark Poulsen)을 불러 머리 없는 동상을 찍게 했고, ‘남성들의 성적 환상에 항의하기 위해 나체로 앉아있는 인어공주상의 머리를 잘랐으며, 다음번에는 남성의 성기를 자르겠다’는 무시무시한 팩스를 경찰서로 보냈다. 3일 후 그들은 미하엘 폴센에게 다시 연락을 취해 동상의 머리를 방송국 옆에 두었다고 알려주었다.
이 사건 후 코펜하겐 시의회는 새로 복원되는 인어상은 속이 빈 상태의 주물이 아니라 단단하게 보강하여 잘라내기 어렵도록 만들 계획임을 밝혔고, 이때 이후 잘려나가는 일은 없는 것으로 볼 때 속을 채워서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64년의 동상 참수를 고백했던 위르겐 내쉬는 이 사건에 대해 ‘표절‘이라며 분개했다.
■ 2003년: 훌리건들의 라이벌 의식
▲ 북유럽 3개국(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은 축구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하다. 이에 인어공주 동상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거나 해당 국가의 국기가 칠해지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 2003년 9월 11일: 반전 시위대의 폭발물 사용
▲ 새벽 3시경 순찰하던 경찰에 의해 인어공주가 바닷물에 둥둥 뜬 채로 발견되었다. 폭발물로 받침대인 바위에서 분리되어 바다에 떨어진 것. 이 공격은 덴마크의 이라크전 개입에 항의하는 반전 시위대의 행동으로 추정되었다. 인어공주의 손목과 무릎에도 폭약을 넣기 위해 만든 구멍이 생겼다.
■ 2004년 12월 16일: 터키 EU 가입 반대
▲ 터키가 EU와 가입 협상을 하자 이에 항의하는 누군가에 의해 부르카가 입혀지고 ‘터키가 EU에(가입을)? TYRKIET I EU?’이라는 띠가 둘러졌다. 점차 화풀이형 파괴보다는 목적이 있는 시위의 용도로 인어공주상이 사용되는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 2006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동상의 팔에 성인용품이 부착되었고 녹색 페인트가 칠해졌다. 3월 8일이라는 날짜가 적힌 것으로 보아 국제 여성의 날과 관련된 행동으로 추정되었다.
■ 2007년 3월 3일: 무정부주의자들의 시위
▲ 1897년 만들어진 코펜하겐 Jagtvej 69에 위치한 ‘웅돔슈세트(Ungdomshuset, 청년들의 집)’는 20세기 초 노동운동의 거점이었다. 이 곳은 1982년부터 좌파 청년단체가 무상 임대하고 있었는데, 시 당국은 오래된 건물의 수리비가 너무 비싸 폐쇄를 결정했으나 청년들의 설득으로 임대가 연장되다가 결국 종교단체에 매각되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기를 거부하는 청년단체의 과격한 시위가 이어졌고 인어공주상에도 핑크 페인트를 뿌리고 ’69’라는 숫자와 무정부주의자 로고를 새겨 넣었다. 격렬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웅돔슈세트는 철거되었다.
■ 2007년 5월 20일: 무슬림이 된 인어공주
▲ 동상은 또 한 번 무슬림 복장을 입고 부르카를 뒤집어썼다. 덴마크로 무슬림 난민들이 몰려오는 상황에 항의하는 의미로 추정되었다.
■ 2014년 4월 25일: 50주년 기념 퍼포먼스
예술가 우베 맥스 옌센(Uwe Max Jensen)은 인어공주 참수 50주년을 기념하여 알몸으로 동상까지 올라가 톱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 2017년 5월 30일: 포경 반대
▲ 포경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피를 상징하는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썼다. 이들은 동상 근처의 아스팔트에 ‘덴마크여, 페로제도의 고래를 보호하라(Danmark defend the whales of the Faroe Islands)’는 문구를 남겼다.
■ 2017년 6월 14일: ‘압둘레에게 자유를’
▲ 동상은 파란색과 흰색의 페인트를 뒤집어썼다. 용의자인 신장 170cm, 긴 금발머리의 날씬한 여성은 ‘Befri Abdulle’라는 문구를 남겼다. 당시 덴마크 정신병원에서 소말리아 난민 압둘레 아흐메드(Abdulle Ahmed)라는 36세의 남자가 2001년부터 감금되어 폭력과 약을 강요당한 사건이 큰 논란이 되었는데 이에 항의하기 위한 행동으로 추정되었다.
■ 2020년 1월 13일: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 동상의 받침돌에 빨간 페인트로 ‘Free Hong Kong’이라는 문구가 쓰였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곳을 노린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의 행동으로 추정되었다.
■ 2020년 1월 30일: 채식주의자 인어공주
▲ 채식주의자들이 중국으로의 돼지고기 수출에 항의하는 일환으로 인어공주상에 돼지 가면을 씌우고 사육 돼지들의 환경개선과 생산 축소를 호소했다. 활동가들은 언론사들에게 돼지 가면은 간단히 제거할 수 있고 동상에 손상을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파괴행위라고 보도하지 말아 줄 것을 요구했다.
■ 2020년 7월 3일: Black Lives Matter
▲ 동상에 스티커가 붙여지고 받침대에는 ‘인종차별주의자 물고기(RACIST FISH)’라는 문구가 쓰였다. 용의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일환이거나 디즈니에서 실사화되는 인어공주 역을 맡은 흑인 배우 할 베일리(Halle Bailey)의 배역 비판에 항의하는 행동으로 추정되었다.
▲테러와는 상관없이 인어공주 동상을 통해 코로나19 마스크 착용 캠페인도 벌어졌다.
수십 년간 여러 테러가 계속되자 2007년 코펜하겐 시는 더 이상의 동상 파손을 막고 관광객들이 올라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인어공주의 위치를 항구 쪽, 그러니까 사람들의 발이 닿기 힘든 물 쪽으로 들어간 위치로 옮길 것을 고려했지만 한해 백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상품의 위치를 함부로 바꿨다간 방문객이 급감할 것을 우려했는지 지금도 처음 위치에 그대로 있다.
2017년에는 범죄예방에 효과적인 CCTV 설치도 제안되었으나, 2020년에도 여전히 테러가 일어나는 것으로 봐선 개인정보에 민감한 유럽답게 결국 설치는 되지 않은 듯하다.
숫자와 단어로 보는 인어공주 동상 이야기
■ 1.25 / 175:
동상의 크기는 앉아있는 높이가 1.25m, 무게는 175kg이다.
■ 75:
연간 코펜하겐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75%가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간다. 이 숫자는 백만 명에 달한다.
■ 38:
인어공주 동상은 외국인들에게도 덴마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덴마크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한 일간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38%의 국민들이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인어공주 동상을 선택했다.
■ 2010:
인어공주 동상은 2010 중국 상하이 엑스포(5월 1일~10월 31일)의 덴마크관에 전시되었는데,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코펜하겐을 떠난 것이었다. 코펜하겐 시민의 52%가 인어공주가 상하이로 가는 것을 반대했다.
▲ 상하이 엑스포의 인어공주상
혹시나 있을 파손행위를 피하기 위해 코펜하겐에서 상하이까지의 경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며, 동상이 없는 동안 중국의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Ai Weiwei)의 디스플레이 인어공주가 설치되어 상하이에 전시된 모습이 실시간 중계되었다.
▲ 디스플레이 인어공주 | 돌아오는 인어상
이후 인어공주 동상은 11월 20일 무사히 외유를 마치고 복귀했다.
■ 외설 논란:
2015년 12월, 덴마크 정치인 메테 예르스코우(Mette Gjerskov)가 페이스북에 인어공주 동상 사진을 올렸다가 누드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였다는 경고 알림을 받았다. 2015년 3월에 페이스북은 ‘누드 인물을 묘사한 회화, 조각 및 예술사진은 허용한다’는 규정을 이미 허용한 바 있었기 때문에 이 결정은 실수임을 인정하고 이미지 게시를 허용했다.
■ 하이브리드 다리:
조각을 자세히 보면 인어공주의 다리는 완전한 지느러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의 다리도 아니다.
안데르센의 원작에는 다리가 지느러미로 서서히 변하거나 혹은 반대로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해가는 중간과정의 장면은 없기 때문에 이는 인어라는 것을 더욱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조각가 임의로 ‘시적 허용’을 감행한 것이다.
■ 작은 인어상:
영어 ‘The Little Mermaid’ 나 덴마크어 ‘Den lille Havfrue’를 그대로 직역해 ‘작은 인어상’으로도 칭하지만 아무래도 동상이기에 ‘작다’라고 하면 그 의미를 크기로만 받아들이게 된다.
1837년 출간된 안데르센의 원작 내용에 따르면, 인어공주는 6명의 자매들 중 막내로 나이 15세가 되자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왕자를 구하게 된다. 즉 Little의 의미는 ‘어린’, ‘막내’의 의미가 더 깊게 담겨 있다. 또한 디즈니 공주시리즈에 익숙한 탓인지 작은 인어보다는 역시 인어공주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 사본:
비용과 복구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으로 인한 피해가 문제 되지 않는다면 인어공주는 사실상 매우 안전하다. 이는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이 미리 석고로 두 개의 주형을 떠놓았기 때문이다.
▲ 100주년 기념달력, 세계각국의 인어공주 레플리카
1964년 첫 참수 사건으로 머리가 분실되면서 이미 최초의 동상은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유족들이 기밀 장소에 보관한 주형을 이용해 원본과 같은 제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서울 한강공원 인어공주
세계 각지에 인어공주의 복제품이 존재하는데 이는 표절한 모조품이 아니라 모두 조각가의 가문이 제작을 맡아 설치된 것들이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광장에도 2016년 10월 24일 코펜하겐시로부터 기증받아 제막식을 가진 인어공주가 있는데 에릭센 가문이 담당해 오리지널의 80% 크기로 제작하였다.
▲ 한강공원의 인어공주와 코펜하겐 시청의 광화문 조각
반대로 코펜하겐 시청 3층 로비에는 서울시에서 기증한 광화문을 소재로 조각한 권창남 작가의 작품(기억-그곳에 가면)이 설치되어 있다.
인어공주의 악명 높은 저작권
인어공주 동상의 저작권은 조각가인 에드바르드 에릭센의 손자 얼링 에릭센(Erling Eriksen)측이 가지고 있고, 원작자의 사망 이후 70년까지 보장되는 저작권법에 의해 유족들은 2029년까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들은 언론이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출판물과 표절에 민감해 고소를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본인들은 저작권을 챙기면서도 공식페이지에서는 인어공주 동상의 모델이 조각가의 아내였다는 설명만 있을 뿐, 얼굴의 모델이었던 발레리나 엘렌 프라이스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어서 빈축을 사고 있기도 하다.
▲ 엘렌 프라이스
2005년, 덴마크의 한 신문은 허락 없이 홍보성 기사 속에 인어공주상의 사진을 첨부했다가 10,000 크로나(한화 약 133만 원)의 저작료를 청구당했다. 또한 덴마크 일간지 Berlingske는 2020년 초에 인어공주를 사악하게 묘사한 삽화를 게시한 것에 대해 285,000 크로네(한화 약 3,735만 원)의 벌금을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덴마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무차별 저작권 소송의 대상이 되는 것에 언론이나 대중은 매우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덴마크 위키피디아는 2014년부터 저작권 다툼을 피하기 위해 인어공주가 삭제된 사진을 사용하는 등 덴마크 내에서 만큼은 냉혹한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 덴마크 위키의 인어공주상 | Benoît Prieur
또한 2019년부터 유족 측은 인어공주 동상을 세 가지 사이즈(S/M/L)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크기는 S사이즈 22.86cm / 2.7kg, M사이즈 91.44cm / 40kg, L사이즈 152.4cm / 150kg이며 가격은 S사이즈 3120달러, M사이즈 35700달러, L사이즈 90500달러이다.(서울시에 설치된 인어공주 동상이 L사이즈로 150kg이다)
▲ S / M / L 사이즈별 인어공주
위에서 말했듯이 유족 측은 원본 석고 주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기만 다를 뿐 원본과 흡사하다. 저작권이 종료되어도 오리지널 제품 업체로써 공고히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참고문헌:
• Den lille Havfrue. Danish Wikipedia link
• The korea Herald. Little Mermaid’s replica statue unveiled in Seoul link
• BBC. Facebook blocks Little Mermaid over ‘bare skin’ link
• The Little Mermaid Products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