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54) 1911년, 대학 신입생 J.R.R. 톨킨

아래의 사진은 영국의 작가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이 1911년, 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대학의 신입생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톨킨은 맨 뒷줄 두 번째(붉은 원)에 서있는 학생이다.

 

아래의 사진은 영국의 작가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이 1911년, 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대학의 신입생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1


세계적인 대문호가 촬영되어있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단체사진과 크게 다른 점이 없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고 보면 안타까운 역사를 담고 있다.

 

사진 속에는 총 53명의 대학생들이 미래를 꿈꾸며 서있지만 이중 24명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영국의 작가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이 1911년, 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대학의 신입생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3
▲ 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대학의 J.R.R. 톨킨(가운데)


1914년 8월,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으로 향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데다가 사랑하는 여자와 약혼까지 한 톨킨이 참전을 꺼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톨킨은 학위를 마칠 때까지 입대를 연기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국가를 위해 참전을 독려하는 당시의 사회분위기로 인해 이런 행동은 지인과 친척들의 경멸을 감수해야 했다.

 

아래의 사진은 영국의 작가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이 1911년, 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대학의 신입생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5
▲ 군복을 입은 톨킨(1916)


결국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떠밀리듯이 장교로 자원(?) 입대한 톨킨은 서부전선에서 벌어진 솜 전투(Bataille de la Somme)등에 수차례 참가하다가 참호열(Trench fever)에 걸리는 통에 전투현장에서 벗어나 병원신세를 지면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함께 입대한 친구들의 안타까운 전사 소식, 신사도는커녕 인간미조차 사라진 장교들의 모습은 톨킨을 괴롭게 만들었지만 일반 사병들의 용맹스러움과 우직함은 그에게 감명을 주었다.

 

아래의 사진은 영국의 작가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이 1911년, 옥스퍼드 대학교 엑서터 대학의 신입생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7
▲ 반지의 제왕 원작과 영화


이런 1차 대전에서의 경험은 훗날 ‘호빗(Hobbit)’이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같은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고, 특별한 능력 하나 갖추지 못한 나약한 호빗들이 세상을 지키고 바꾸는 모습은 그가 전쟁터에서 본 평범한 사병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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