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55) 1937년, 버려진 찰턴 골키퍼

1937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의 찰턴 애슬레틱과 첼시가 맞붙었다.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에 41,484명의 관중이 운집하였고, 짙은 안개가 낀 가운데 경기는 1-1로 팽팽한 상황. 한차례 경기가 중단된 가운데 심판은 경기를 재개한 상태였다.

 

지난 1936-37 시즌에 승점 3점 차이로 아쉽게 리그 우승을 맨시티에 넘겨준 찰턴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최후방을 책임지는 찰턴의 골키퍼 샘 바트람(Sam Bartram)도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경기에 집중했다.

 

1937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의 찰턴 애슬레틱과 첼시가 맞붙었다. 1
▲ 찰턴 애슬레틱(Charlton Athletic F.C.) 엠블럼


그러던 어느 순간 경기장은 고요해졌는데, 바트람은 이것을 강팀이었던 찰턴이 하프라인 위로 첼시를 완벽하게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골라인 위아래를 서성거리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1937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의 찰턴 애슬레틱과 첼시가 맞붙었다. 3
▲ 샘 바트람의 경기 모습


그렇게 일방적인 경기가 이어지면서 눈을 크게 뜨고 역습에 대비하던 바트람의 앞에 드디어 첼시의 공격수가 등장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앞에 등장한 것은 경기장에 배치되어 있던 경관이었고 경기는 짙은 안개로 인해 취소된 상황이었다.

 

“아니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경관이 바트람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경기는 이미 30분 전에 중단되었다고요. 당신 빼고 모두 철수했습니다.”

 

1937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의 찰턴 애슬레틱과 첼시가 맞붙었다. 5
▲ 1930년대의 경기장에는 조명과 마이크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바트람이 안개를 헤치며 라커룸으로 들어갔을 때 찰턴 선수들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여전히 더러운 유니폼을 입고 있는 바트람을 본 동료들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모두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폭소했다.

 

이틀 후인 12월 27일, 양 팀은 찰턴의 홈구장 더 벨리에서 재경기를 치렀다.

 

찰턴은 51,125명의 홈 관중 앞에서 해롤드 하비스(Harold Hobbis)가 2분 만에 첫 골을 터뜨렸고, 17분에 조지 타드만(George Tadman)이, 25분에 조지 로빈슨(George Robinson)이 연이어 골을 터뜨리며 승기를 잡았다. 첼시는 전반 막판 윌프 치티(Wilf Chitty)가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치면서 경기는 그대로 3-1로 종료되었다.

 

1937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의 찰턴 애슬레틱과 첼시가 맞붙었다. 7
▲ 2008년, 더 벨리(The Valley)


이즈음 찰턴은 전년도의 준우승에 이어 1937-38 시즌도 4위로 마감하며 지금껏 돌아오지 않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샘 바트람의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하지만, 최악의 여건에서도 주전 골키퍼가 경기에 임하던 태도는 클럽을 강팀으로 이끈 힘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7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의 찰턴 애슬레틱과 첼시가 맞붙었다. 9
▲ 샘 바트람(Sam Bartram, 1914~1981)


오늘날 찰턴의 홈구장 더 벨리의 입구에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단 1분도 방심하지 않았던 ‘원클럽맨‘ 샘 바트람의 청동상이 든든하게 구장의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