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5월 3일, 영국 대공습의 다음날 아침
세계 제2차 대전 중인 1940년 9월 7일부터 1941년 5월 21일까지 독일 제3제국의 공군은 영국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격 폭격을 가했다. 이를 전쟁사에서는 ‘영국 대공습(The Blitz, 런던 대공습)’으로 칭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런던 시민들의 지하철역 대피 사진이 바로 이 시기에 촬영된 것들이다.
▲ 런던 지하철역 승강장과 선로에 대피한 시민들
당시 런던에는 영국 인구의 20%에 달하는 900만 명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기에, 영국의 정치인들과 언론은 독일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상상하기도 힘든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을 예상했다.
아래는 영국 잡지 픽쳐 포스트(Picture Post)의 의 사진작가 버트 하디(Bert Hardy, 1913~1995)가 영국 대공습 시기인 5월 3일의 아침을 담은 것이다.
▲ 독일의 공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거리와 건물들.
▲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한 시민이 집에서 멀쩡한 가구와 집기들을 꺼내 쌓아놓고 있다.
▲ 아침이 되자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을 구경하는 런던 시민들.
▲ 집이 폭격으로 파괴되자 대피소로 가기 위해 꺼내온 옷과 이불 꾸러미에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여성.
▲ 폭격 다음날 아침, ARP 감시관(Air Raid Precautions: 공습 예방 조치)이 거리에 임시로 마련한 안내소에서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도움을 청할 곳과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 폭격으로 발생한 화재를 진화하는 소방관들을 시민들이 구경하고 있다. 공습 기간이 길어지면서 전쟁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변해갔고 진화작업이나 구조의 방해가 되기도 하였다.
▲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 주변에 구경꾼들이 모여있다.
▲ 런던 신사들이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과 집기들을 구경하고 있다.
▲ 폭격으로 파괴된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1938년 건설된 워너 웨스트엔드(Warner West End) 극장으로 1993년에 철거되었다. 하지만 전면의 모습은 그대로 남긴 채로 재건축되어 현재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뷰 웨스트엔드(Vue West End)가 되었다.
▲ 레스터 스퀘어, 뷰 웨스트엔드(Vue West End) 극장
런던 대공습은 영국에 큰 피해를 안겨주었지만 전쟁 전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규모의 피해보다는 적었다. 전쟁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폭격을 ‘흐린 날씨‘정도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우려되었던 사회 붕괴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결국 공습을 통해 영국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던 독일의 목적도 무산되었다.
어느새 영국 국민들은 대피하는 생활에 적응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도 점점 줄어들었고, 심지어 주부들은 조사관들에게 ‘대피가 시작되면 집안일을 쉴 수 있어서 좋다‘며 말하기도 했을 정도.
이 기간 중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답한 영국인은 불과 3%였다.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와 불굴의 정신으로 영국 대공습으로부터의 공포와 좌절을 이겨낸 것을 오늘날 ‘블리츠 정신(Blitz Spirit)’이라고 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