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77) 군인 등에 업힌 당나귀의 정체
한 군인이 노약자를 보살피듯 조심스럽게 당나귀를 등에 업고 목초지를 지나가고 있는 사진은 과거 전쟁터에서 찍힌 흥미로운 모습으로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2차 대전 중 당나귀를 등에 업고 이동하는 군인. 실은 동물을 사랑하거나 연민 때문이 아니라 당나귀가 조심성 없이 지뢰를 밟으면 군인들도 피해를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업은 채로 지뢰지대를 지나가고 있는 것’
동물과의 교감에 뭉클했던 마음을 식게 만드는 반전이지만 이 설명이 오히려 사실이 아니다. 사진에 담긴 내용은 보통의 반전패턴과는 달리, 보이는 그대로 동물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가 드러난 모습이 맞다.
전쟁 중 발견된 새끼 당나귀
우선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2차 대전이 아닌 그 후의 시점이다. 군인이 입고 있는 복장이 1940년대의 군복이 아니기 때문. 또한 일렬로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고 흩어져서 이동하는 군인들의 모습으로 지뢰지대라는 설명도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알제리 전쟁 중이었던 1958년 7월, 프랑스 제13외국군단 준여단(13th Demi-Brigade of the Foreign Legion)의 부대원들은 작전 중 탈진한 새끼 당나귀를 발견했다.
▲ 죽어가다 구출된 새끼 당나귀
병사들은 불쌍한 새끼 당나귀를 데리고 막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녀석을 업고 귀환하게 되었다.
이렇게 복귀하는 사진이 종군기자에게 촬영되면서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었다.
▲ 기사화된 밤비의 이야기 (Daily Mirror, 1958.02.19)
졸지에 입대(?)하게된 새끼 당나귀는 막사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커다란 눈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끼 사슴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밤비(Bambi)’라는 사랑스러운 이름까지 붙여졌다.
▲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 ‘밤비(bambi)’
그 사이 사진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미국동물학대방지협회(ASPCA)는 새끼 당나귀를 업은 군인에게 감사를 표하는가 하면,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제13외국군단 준여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 눈이 큰 밤비와 웃고 있는 병사
하지만 결국 당나귀를 업은 군인의 이름은 제13외국군단 준여단 측이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드러나지 않았다. 또 밤비를 실제로 업은 것은 한 명이 아니었고, 여러 명이 교대로 등을 내어주며 부대까지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일년 후, 데일리 미러는 밤비의 근황을 다시 한번 전했다.
▲ 일년 후 밤비의 근황 (Daily Mirror, 1959.02.16)
짬이 찬 밤비는 어느덧 일병으로 진급해 있었고, 건초 대신 전투식량을 먹으며 부대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누구나 밤비의 사육 담당이었고, 밤비는 기지 내의 어디든지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후 밤비는 프랑스 군단이 소유한 알제리 씨디벨아베스(Sidi Bel Abbès)의 농장으로 간 것 외에는 정확한 후일담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삭막한 군대에서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만큼 평화로운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