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78) 1910년, 파리 대홍수와 떠다니는 보도블록
1909년 겨울부터 프랑스 파리는 평년보다 강수량이 많아지면서 센강의 수위가 8m나 높아졌다.
급기야 1910년 1월 하순에는 센강이 터널과 하수구를 통해 범람하면서 파리 시내를 물에 잠기게 만들었다. 이 재난을 오늘날 ‘1910년 파리 대홍수(Crue de la Seine de 1910)’라고 칭한다.
파리 대홍수는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다행스럽게도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약 4억 프랑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안겼다.(현재가치 약 15억 달러)
20세기 초였던 만큼, 당시의 피해 상황들은 사진으로도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이 침수된 파리 거리에 책이 둥둥 떠다닌다는 아래의 이미지.
도서관이 물에 잠기면서 소장도서들이 쏟아져 나와 부유하는 안타까운 모습은 1910 파리 대홍수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자주 공유되지만 사실 저 부유물들은 책이 아니다.
우선 사진을 보면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다.
1. 책이 그렇게 물에 쉽게 뜰까.
종이는 물에 쉽게 젖기 때문에, 속이 비어있지 않는 이상 책이 수면 위로 몸체의 절반 이상을 내놓은 채로 떠있기는 힘들다.
2. 펼쳐진 책이 하나도 없다는 점.
물 위로 떠오른 책들만 모여있다고 쳐도, 위 사진처럼 펼쳐진 책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 단 한 권도 펼쳐져 있지 않다.
3. 책의 모양이 이상하다.
자세히 보면 책이 하나같이 아주 좁고 길쭉한 형태의 비율을 가지고 있다. 책보다는 오히려 벽돌에 가까운 형태로 보인다.
나무로 만든 보도블록
사실 책으로 보이는 부유물들은 과거 서구의 도시들이 도로포장용으로 사용한 ‘목조블록‘으로,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앞 거리가 침수되어 목조블록들이 떠오른 모습이다.
▲ 해외 사이트에서도 책으로 오해하고 있는 모습
자갈이나 화강암으로 포장한 도로는 과거의 주 운송수단이었던 말들이 발을 삐끗하면서 다치기도 쉬웠고, 마차의 바퀴에게는 장애물과 같았다. 그에 비해 목조블록은 평평했고 가공이 쉬웠던 데다가 말발굽이 내는 소음까지 훨씬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목조블록이 깔린 도로의 인근 건물은 현대의 역세권처럼 다른 곳보다 임대료가 높기도 했다.
▲ 평평한 목조블록(왼쪽)과 울퉁불퉁한 벨지언 보도블록(belgian block paving)
하지만 목조블록에도 단점이 있었다. 재질상 바큇자국이 남을 정도로 쉽게 손상되었고, 타르를 원료로 한 크레오소트(Creosote)를 도포하지 않으면 부패하기 쉬웠다. 게다가 말의 대소변을 흡수하여 미끄러워지거나 역겨운 냄새를 퍼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도로가 침수되기라도 하면 파리 대홍수의 사진과 같이 물 위로 둥둥 떠오르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당시의 다른 사진에서 목조블록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20세기 초 이후 자동차가 도로를 장악하고 바퀴에는 타이어가 장착되면서 마차를 위한 도로포장재였던 목조블록은 서서히 사라졌고, 이제는 그것의 존재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 미국 피츠버그 섀디사이드(Shadyside)에 남아있는 로슬린 플레이스(Roslyn Place) 목조블록 거리
즉 현대인들이 전혀 인식할 수 없는 과거도시의 풍경 중 하나가 ‘도로의 목조블록‘이기에, 목조블록이 물에 떠다니는 모습을 비슷한 형태의 책으로 유추하고 오해한 케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