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인도여행 중 호랑이 사냥에 나선 영국 왕세손 ‘클래런스 공작’
빅토리아 여왕 치세였던 1889년 7월, 영국 왕위계승 서열 2위 클래런스 공작(Prince Albert Victor, Duke of Clarence)은 영국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동성매춘사건이었던 ‘클리블랜드 스트리트 스캔들(Cleveland Street Skandal)’에 휘말리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 남성 간의 성관계는 불법이었기에 왕실을 비롯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클래런스 공작은 마치 ‘유배를 떠나듯’ 인도제국으로 향했다. 이에 언론이 ‘왕세손이 스캔들을 피해 인도로 달아났다‘라고 보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실 클래런스 공작의 인도여행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계획돼 있던 것이었다.
▲ 클래런스 공작(Prince Albert Victor, Duke of Clarence, 1864~1892)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식민지에 도착한 본국의 왕세손은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아래는 1890년, 인도에 머물던 클래런스 공작이 코끼리를 타고 호랑이 사냥에 나선 모습을 담고 있다.
▲ 사냥에 나설 코끼리를 살펴보는 사람들. 코끼리를 이용하는 것은 점프력이 좋은 호랑이의 공격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사냥방법이었다.
▲ 코끼리 등에 설치된 좌석에 올라타고 출발하는 클래런스 공작(흰색 옷). 1889년 11월 9일, 봄베이(현 뭄바이)에 도착한 그는 약 7개월간 인도에 머무르며 기차여행과 사냥을 즐겼다.
▲ 오늘날 관광명소인 랄바그 식물원(Lalbagh Botanical Garden)의 ‘유리하우스’는 인도에 머물던 클래런스 공작이 1889년 11월 30일에 초석을 놓았다.
▲ 밀림에 난 길을 따라 이동하는 코끼리 부대
▲ 히말라야 남쪽 기슭의 밀림 습지를 지나가는 코끼리 부대
▲ 숲 속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코끼리 부대
▲ 코끼리를 타고 안전하게 강을 건너는 사냥꾼들
▲ 강을 건너던 클래런스 공작이 카메라를 향해 쳐다보고 있다. 당시의 카메라 크기와 사진기술을 생각하면 이런 사냥 일지를 촬영하는 것은 영국의 왕세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날이 저물자 캠프를 친 모습. 영국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 사냥꾼들이 코끼리를 목욕시키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 호랑이를 발견하자 횡대로 서서 사냥에 나서는 코끼리 부대. 클래런스 공작(흰색 옷)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다.
▲ 포위망을 좁히며 전진하는 코끼리 부대.
▲ 사냥꾼들의 총에 맞은 호랑이가 수풀 속에 쓰러져있는 모습
▲ 호랑이의 사체를 촬영하는 동안 사냥꾼과 코끼리들이 한발 물러나 둘러싸고 있다.
▲ 코끼리의 등에 호랑이 사체를 싣는 사람들. 10여 명이 들어야 할 정도로 상당한 크기의 호랑이였다.
▲ 코끼리 등에 호랑이의 사체를 고정하는 모습. 주변을 엄청난 수의 코끼리들이 포위하고 있는 모습은 왕실이 아니면 시도할 수 없는 규모이다.
클래런스 공작은 크리스마스를 만달레이(Mandalay)에서, 새해를 캘커타(Calcutta)에서 보내며 7개월간 인도에 머무른 후 본국으로 귀환했다. 귀국 후 결혼을 준비하던 그는 예기치 않게 대유행 중이던 아시아 독감(H2 N2)에 감염되면서 28번째 생일을 맞은 지 불과 6일 만인 1892년 1월 14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로써 동생 조지 5세(George V)가 왕세손이 되며 운명이 바뀌었고, 그는 왕위에 오르며 현재의 윈저 왕조(The Windsor Dynasty)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