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무인도로 추방된 이스탄불의 개들
과거 터키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의 거리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볼거리가 가득했지만 그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풍경은 거리를 떠도는 개들이었다.
한때는 집과 농장을 지켰을 견공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불어나며 콘스탄티노플 거리에는 유기견 혹은 자발적으로 탈출한 개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특히 인적이 드문 골목길은 물론 도시 전역을 점거하고 있는 개떼는 콘스탄티노플만의 특색이었다.
▲ 1880년, 이스탄불 골목의 개
터키인들에게는 ‘개들을 나쁘게 대하면 재앙이 도시를 강타할 것’이라는 토속적인 믿음이 있었다.
특히 주택가와 이슬람 모스크 근처에서는 개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며 긴밀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개들 역시 먹이를 주는 곳이 자신들의 집인양 낯선 이들이 침입하면 짖어대는 파수꾼 역할을 하며 사랑을 받고 있었다.
▲ 엽서 속 이스탄불 거리의 개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외국인 여행객들은 이 넘쳐나는 개의 숫자에 놀람과 동시에 거리 곳곳에 개들을 위해 주민들이 놓아둔 먹이그릇과 물그릇의 숫자에 놀라며 터키인들이 생명을 대하는 인간성 짙은 모습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 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노인
평화롭게 인간과 공존하던 개들은 오스만 제국의 30대 술탄 마흐무트 2세(Mahmud II, 1875~1839)의 시대에 들어서며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근대화되어가는 세상에서 도시를 떠도는 개들은 가난과 질병, 후진성의 상징이었기에 마흐무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 현대화’를 위해 개들을 여러 섬으로 추방할 것을 명령했으나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개들을 다시 데려와야 했다.
▲ 짐꾼과 거리의 개
20세기에 들어섰음에도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은 여전히 좁고 무질서하고 주거지는 폐허였으며 교통체계마저 엉망이었는데, 이처럼 모든 기반시설이 엉망인 마당에 거리에는 더러운 개떼들이 넘쳐나자 1910년 콘스탄티노플 시장은 ‘도시의 모든 개들을 잡아들여 근해의 시브리아다(Sivriada)섬으로 보낼 것’을 명령했다.
길거리의 개는 4세기 동안 낙후된 도시의 상징이었던 만큼 현대화 지지자들은 일단 개들만 사라지면 모든 가난과 질병이 사라지고 깨끗하고 이성적인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 시브리아다 섬. 하이야르슈자다(Hayırsızada)라고도 불리는데 ‘불길한 섬’이라는 뜻이다.
이 정책에 주민들은 격렬히 반대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브리아다섬은 나무 한그루 없는 암벽 무인도였기 때문이다.
많은 주민들이 시 당국의 섬 격리정책에 반발하며 개들을 집안이나 폐가에 몰래 숨기기도 했으나 결국 수만 마리의 개들이 당국이 동원한 인력에 의해 케이지에 담겨 황무지 섬으로 옮겨졌다.
▲ 섬에 버려진 개들
당국은 ‘옮겨진 개들에게는 먹이와 물이 확실히 제공될 것’이라며 주민들을 안심시켰지만 사실 도시 내에 있는 동물보호소였더라도 지원이 제대로 되었을 리가 만무한 시대에 바다 건너 섬에 있는 수만 마리의 개들을 먹여 살릴 방도는 없었다.
해안가의 주민들은 굶주린 개들의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몇 날 몇 주간 울려 퍼지다가 점점 잦아들어가는 것을 들어야 했다.
이 개 학살은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이제 신의 재앙이 곧 닥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는데, 이후에 일어난 발칸전쟁과 세계 제1차 대전이 바로 이 학살에 대한 벌로 내려진 재앙이라고 믿어졌다.
▲ 울부짖는 섬(2010) 포스터와 시브리아다 섬의 추모비
이 이야기는 2010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울부짖는 섬(Chienne d’histoire)’으로 만들어졌으며, 터키의 정당인 동물당(Hayvan Partisi)은 이 사건으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12년 6월, 시브리아다섬을 방문해 당시 죽어간 수만 마리의 개들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