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에메랄드 눈동자, ‘아프간 소녀’의 인생 역정
유명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는 빈곤지역의 인물을 촬영한 작품들을 많이 남겨왔는데, 그중에서도 1985년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6월호 커버모델로 등장한 ‘아프간 소녀(Afghan girl)‘가 가장 유명하다.
희귀한 에메랄드 색상의 눈빛만으로도 많은 사연을 말하고 있는 듯한 아프간 소녀는 1984년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 형성된 파키스탄 나시르바그(Nasir Bagh) 난민캠프에서 스티브 맥커리와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12세로 알려졌던 파슈툰족 소녀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뿜어내며 ‘아프간 모나리자’라는 별명으로 서방세계에서 아프간 난민의 상징이 되었다.
▲ 내셔널지오그래픽 1985년 6월호 표지 ‘아프간 소녀’
‘아프간 소녀’와의 재회
그렇게 아프간 소녀의 모습은 미디어에 굵직하게 남겨졌지만 현실의 소녀는 대중으로부터 잊혀졌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들 중에서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될 줄은 맥커리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소녀의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
스티브 맥커리는 1990년대에 소녀의 근황을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인맥과 정보를 동원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2000년 초에는 유엔난민기구가 나시르바그 난민캠프를 곧 폐쇄한다는 일정이 들려오면서 영원히 아프간 소녀는 묻힐 위기에 처하게 된다.
▲ 파키스탄 나시르바그 아프간 난민캠프
결국 2002년 1월경,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팀을 꾸려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방문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스탭들이 만난 몇몇 여성들은 ‘내가 아프간 소녀’라고 거짓 주장을 하기도 했고, 1984년의 표지 사진을 본 아프간 남성들이 ‘틀림없이 내 아내의 젊은 시절’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엉터리였다.
그때 나시르바그 난민캠프의 남은 주민들 중 소녀의 동생을 알고 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 2002년, 17년 만에 찾아낸 ‘아프간 소녀’. 그녀는 13~16세 무렵에 결혼했다.
추적팀은 아프가니스탄의 외딴 산간마을에서 ‘아프간 소녀’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17년 만에 알게 된 소녀의 이름은 샤르밧 굴라(Sharbat Gula)였다.
샤르밧은 더 이상 겁에 질린 눈빛의 소녀가 아니라 기혼여성이자 어머니가 되어 제빵사인 남편, 세 딸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예술적인 사진작품은 맥커리를 유명 작가로 만들어주었지만 정작 샤르밧의 삶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던 것이다.
▲ NGC를 들고 있는 샤르밧. 표지모델이 되었다는 것은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긴 세월 아프간 소녀의 외모는 10대 초반이었던 시절과 극적으로 달라져 지난 삶의 굴곡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소녀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바로 홍채인식 알고리즘의 창시자 영국의 존 도그먼(John Daugman) 박사가 아프간 소녀와 이 여성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홍채패턴을 통해 확인해 준 것이다. 현대 과학이 아니었다면 그녀와의 재회는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 과학으로 아프간 소녀를 인증한 존 도그만 박사
다시 난민이 된 ‘아프간 소녀’
조용한 삶을 살아갈 것으로 보였던 샤르밧 굴라는 2016년 불법체류 혐의로 파키스탄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보도로 화제가 되었다. 특히 위조 신분증을 소지한 혐의로 최소 14년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녀의 조국 아프가니스탄은 관용을 베풀어달라며 파키스탄 측에 호소했다.
결국 샤르밧은 문맹이라 계획적인 범죄는 아니었다는 판단과, 지병인 C형 간염을 앓던 남편이 2012년 사망해 집안의 가장이라는 상황 등이 참작되어 징역 15일과 11만 루피(약 105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추방되었다.
▲ 파키스탄 경찰에 체포되는 샤르밧
이후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 샤르밧 가족에게 뜻밖의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가 그녀에게 280㎡(85평)의 아파트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대통령으로서 ‘난민이었던 국민들의 삶이 개선되고 평화가 도래했다’는 선전용으로 쓰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프간 소녀’는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었다.
▲ 가니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샤르밧 가족. 지난 8월 탈레반을 피해 해외로 달아나 비난을 샀던 대통령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행복과 평화는 일시적이었다.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으며 그들의 적대세력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것만으로도 샤르밧이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는 것은 위험했던 것이다.
기증받은 아파트에서 잠시나마 행복하게 살던 샤르밧은 2021년 11월,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행 비행기에 오르며 또다시 난민이 되었다. 현재 이들 가족은 탈출에 성공해 이탈리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이탈리아 총리는 샤르밧 가족의 로마 도착을 공개하면서 이탈리아 정부가 아프간 난민 대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또다시 이들 가족이 정치인의 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모습이기도 하였다.
▲ 스티브 맥커리와 ‘아프간 소녀’
2021년 11월 25일, 샤르밧 굴라는 이탈리아에서 난민지위를 부여받으며 일단 정착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가올 미래에는 아프간 소녀와 그녀의 세 딸 로비나, 자히다, 알리야가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나날이 끝나고 온화해진 아프간 소녀의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