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국가의 여권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브레멘 자유 한자시(Freie Hansestadt Bremen), 1921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1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설립된 브레멘 자유 한자시는 1933년 독일 제3제국에 흡수되기 전까지 자치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 위의 여권은 1921년 발급된 브레멘 자유 한자시의 여권으로 유효기간은 1년이다.

 

특이한 것은 현대의 여권과 달리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정면 사진이 아니라 자유롭게 기타를 치며 카메라를 외면하고 있는 자세라는 점.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3

해당 여권의 주인인 소피 셰이퍼(Sophie Shaper)는 1901년생으로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피우메 자유국(Stato Libero di Fiume), 1923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5

피우메 자유국은 1920년부터 1924년까지 현재의 크로아티아 리예카(Rijeka)에 존재했다. 리예카의 이탈리아 이름이 피우메(Fiume). 1924년 이탈리아의 침공으로 해체된 후 2차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영토가 되었고, 1992년 크로아티아가 해체되면서 크로아티아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7

이 여권은 1923년 피우메 자유국에서 발급된 것으로 현재와 달리 측면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USSR), 1958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9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였던 소련은 모든 인민들이 여권을 소지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인민에게 여행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이 허락된 특수한 경우에도 동구권 국가로 한정되었고, 현재의 관광과 같은 일상적인 여행은 아니었다.

 

단치히 자유시(Freie Stadt Danzig), 1935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11

1920년 베르사유조약에 의거해 단치히(현재 폴란드 그단스크)에 설립된 국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으로 소멸되었다.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13

1935년 발급된 단치히 자유시의 여권의 사진은 현재와 흡사하다. 소지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미소를 짓는 등 얼굴 표정도 변화시키지 않았다.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Mandatory Palestine), 1939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15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령 시리아에서 영국이 할당받아 1946년까지 통치한 곳으로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위치한 지역이다.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17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이름으로 1939년에 발급된 여권의 소지자는 몰도바 출신의 유태인으로 이곳으로 이주했다.


지리적인 특성상 여권의 내용이 영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 3가지 언어로 작성되었다.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1964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19


흔히 서독과 대비해 동독으로 부르는 독일 민주공화국의 외교관이 가지고 있던 외교여권.

 

소련의 동독 영사관에 근무한 외교관이 소지한 여권이었던 이유로 내용은 독일어와 러시아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동독역시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여행은 자유롭지 않았으며 이 여권은 1990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효력을 상실했다.

 

만주국(Manchukuo), 1940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21


1932년, 일본이 현재의 만주에 세운 괴뢰국가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1906~1967)가 만주국 황제로 옹립되었다.

 

여권의 주인은 러시아 이민자로 만주국 여권 소지자는 일본에 무기한 체류가 허가되었다. 만주국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소멸되었다.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23

 

영국령 홍콩(British Hong Kong), 1988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25

제1차 아편전쟁(1839~1942) 이후 홍콩을 할양받은 영국은 공산주의 통치하에 있었던 중국 본토와는 달리 세계 금융의 허브로 크게 번영했다.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27


1988년 발급된 이 여권은 홍콩의 반환을 확정한 1997년 6월 30일까지 유효했다. 하지만 중국이 반환 당시 협정과 달리 홍콩보안법을 제정하자 영국은 1997년 이전에 태어난 홍콩인들을 대상으로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ㆍBNO)여권을 발급하고 특별비자 신청을 받았다.

 

BNO여권을 소지한 홍콩인과 그 가족은 영국에 5년만 거주하면 1년 후에는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시암(Siam, สยาม), 1937년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29

태국의 옛 이름인 시암(Siam, 사얌)에서 발급된 여권. 1939년 타이(Thai, เมืองไทย)로 개칭되며 효력이 소멸되었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제국국가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는 국가지만 지역 내에서 프랑스의 힘이 막강했던 이유로 1937년 발급된 여권의 내용에는 프랑스어도 사용되었다.

오늘날 해외 국가를 입국하는 데 있어서 필수품이 된 것이 여권(旅券, Passport)이다. 특히 인물을 식별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76년 필라델피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사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기에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31


이 여권의 소지자는 동남아 국가들을 방문했는데 베트남을 방문하기 위해 프랑스 영사관의 허가를, 필리핀 방문을 위해 미국 영사관의 허가를, 홍콩을 방문하기 위해 영국 영사관의 허가를 받았다. 당시 서구 국가가 동남아를 지배한 흔적이 엿보이는 여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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