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85) 빅토리아 시대의 코파는(?) 귀부인
근엄한 표정의 빅토리아시대 여성이 코를 파는 듯한 모습으로 흠칫 놀라게 되는 사진이 있다.
턱에는 수염같은 것이 자라고 있어서 ‘혹시 남자광대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모습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 사진이지만 실은 ‘스너프(Snuff)‘라 불리는 코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다.
▲ Woman taking snuff | Le journal Le Sorelois, 1882.11.14
스너프는 찌꺼기 잎을 원료로 만든 가루형태의 담배로 주로 콧구멍에 도포하며 잇몸이나 혀에 도포하는 방식도 쓰이는데, 바로 이 코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 코담배(snuff)
신대륙으로부터 유럽에 들어온 담배는 15~16세기에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너도나도 연기를 뿜어내자 이런 모습이 천박하다고 여겨지며 18~19세기에는 부유층과 귀족들 사이에 연기없는 코담배가 사치품으로 유행하였다.
▲ 코담배 피우는 여인(1860)
특히 지위가 높거나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여성들은 고급스러운 금속 케이스를 들고 코담배를 피우며 평민들과 자신을 차별화했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가방이나 시계를 은근히 드러내며 셀카를 남기는 식인데, 어쩌면 200년쯤 후에는 지금의 모습도 우스꽝스럽게 남을지도 모르겠다.
▲ 은제 코담배 케이스
이처럼 상류사회의 구성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과시적인 소비로 평민들과의 차별성을 두는 것이 흔한 사회현상이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삶의 질이 평균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누구나 돈만 있으면 명품 하나쯤은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상류층들은 되려 중저가 제품을 착용함으로써 반소비(Anti-consumerism) 행동으로 평민들과 차별화를 두는 시대가 왔다.
2021년 6월 29일, 잉글랜드와 독일의 2020 유로 축구대회 16강전에 등장한 케이트 미들턴(케임브리지 공작부인 캐서린) 왕세자비는 중저가 브랜드인 자라(Zara)의 59.99파운드(한화 약 9만 5천 원)의 빨간 블레이저 재킷을 입고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소탈한 모습의 영국 왕세자비와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
이는 왕세자비의 수수한 모습으로 대중의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위에 말했듯이 현대사회의 귀족과 재벌들은 소탈함을 드러내는 반소비주의로 평범한 사람들의 과시적 소비와 오히려 차별화를 두는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