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땅’, 1991년 티베트 라싸

프랑스 사진작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Françoise Demulder, 1947~2008)는 적화통일 직전의 베트남에서 3년간을 머무른 후 분쟁지역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통제된 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진을 남겼다.

 

– 관련 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촬영한 1989년 캄보디아 프놈펜

 

1991년, 그녀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당시 외국 언론이 쉽게 발을 들여놓기 힘들었던 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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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거리에서 수동 재봉틀로 옷을 수선해주는 재봉사들. 티베트는 온몸을 던지며 기도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순례자들이 많기 때문에 찢어진 옷을 수선하는 것은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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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를 올리다 잠시 쉬고 있는 티베트 순례자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마니륜(摩尼輪)으로 원통 안에는 불경이 들어있으며 이것을 돌리며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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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거리의 엄마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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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의 거리에서 노점상들이 육류를 늘어놓고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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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의 바코르(八廓) 거리에서 불교 지도자들과 성화가 담긴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달라이 라마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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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코르(八廓) 트롬지캉(Tromzikhang)시장의 어린 수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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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롬지캉(Tromzikhang) 시장에서 불상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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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거리에 수도승들이 앉아 행인들에게 시주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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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번화가를 걷는 비구니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매우 남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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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롬지캉(Tromzikhang) 시장을 걷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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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거리에서 판자 책상을 놓고 무언가를 공부하는 아이. 아마도 수도원(드라탕)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공부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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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정이 밝은 티베트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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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가 있는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인력거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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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에 설치된 2톤의 구리로 만들어진 야크 동상. 1991년 5월 2일, 베이징 중앙로(北京中道)및 링코르 북로(林廓北路)와 노르불링카로(罗布林卡路)의 교차로에 세워졌다.

 

조각은 젱 샤오동(郑晓东)이 디자인했으며, 기념패에는 ‘고원의 보물(高原之宝)’이라고 쓰여 있다. 2008년 이후에는 라싸에 위치한 야오왕산 공원(药王山公园)의 중앙광장으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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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공항에 배치된 중국 인민해방군. 1988년 12월 티베트 자치구의 공산당 서기로 취임한 후진타오(胡锦涛)는 티베트인들의 독립운동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진압으로 대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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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곳곳에 배치된 중국 인민해방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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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거리를 지나는 중국 인민해방군 트럭. 운전석에 앉아있는 장교가 사진기자를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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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인민해방군 기지의 정문을 지키는 보초들이 자전거를 타며 무료한 순간을 달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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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둔하고 있는 부대와 교대할 신병들이 라싸에 입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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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가 고향에 가져갈 선물인지 어린이용 부츠를 구입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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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교로 보이는 중국 군인이 통로에 서서 지나가는 티베트인들 중 거동수상자가 있는지 감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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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이 라마의 여름 별장이었던 노르불링카(罗布林卡)를 구경하는 티베트인과 중국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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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캉 사원(大昭寺) 앞 바코르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

 

티베트에서는 ‘조캉사원이 먼저고 라싸는 그다음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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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조캉사원에 들어가기 전 오체투지로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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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탈라 궁(布达拉宫)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음식과 뜨거운 음료를 판매하는 노점상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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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봉카 암자(帕邦喀) 근처의 거대한 바위에 그려진 부처 앞에서 승려와 티베트인 여성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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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싸 외곽에 위치한 라토 마을의 벽에 겨울을 나게 할 연료가 만들어져 붙어있다. 연료는 지푸라기와 티베트를 상징하는 야크의 똥이 혼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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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토 마을의 한 가옥에서 손자로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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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토 마을에서 장작 한 짐을 힘겹게 지고 가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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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토 마을의 불교 승려와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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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토 드라탕(Rato Dratsang)의 수도승들이 식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드라탕은 티베트어로 대학, 학교를 의미하기 때문에 ‘라토 수도원’으로도 불린다.

 

2012년 달라이 라마는 이곳의 아브봇(Abbot, 수도원 원장)으로 스위스계 미국인 승려인 니콜라스 브릴랜드(Nicholas Vreeland)를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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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토 드라탕의 어린 수도승들. 소라껍데기로 만든 악기인 법라(法螺)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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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토 드라탕의 어린 수도승들이 어딘가에서 구해온 영자신문에서 달라이 라마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있다.

 

1989년 달라이 라마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자 이에 고무된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시위를 하다 체포되었으며, 중국 정부는 시상을 결정한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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