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1] 비봉(飛鳳, 기생)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포요, 본명은 임경자(林敬子)이다.
부산으로 이사하여 초량 사립여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우연한 인연으로 그 학교 교사로 있는 한용구(韓容求)와 결혼하여 6개월을 금슬이 상합(相合)하게 지내었으나 여자의 일생에는 여러 가지의 운명이 무시로 왕래하는 것이리라.
나이 16세에 이르러 무정한 세상 물결은 림경자로 하여금 정랑(情郞)을 이별하고 내지(内地) 광도현(廣島縣)으로 가서 학교에도 다녀보고 노류장화(路柳墻花)로 아름다운 이름도 알려 보았으며, 그리저리 지내다보니 자연히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뿐 아니라 일본 의복으로 가무를 할 때는 일본 여자나 조금도 다른 곳이 없는데 그중 더욱 잘하는 것은 「이소부시(磯節)」 「사노사부시(さのさ節)」 등이다.
금년(1914년)은 18세인데 고국으로 돌아온 후, 고향 마산에서 부모를 받들며 다시 한가한 날을 보내다가 미진한 세연이 그저 남았던지 서남준(徐南淳)과 함께 경성 남부 곡교에서 「비봉(飛鳳)」이라 개명하고 기생 노릇을 시작하니, 일본과 조선의 가무에 능통한 까닭으로 연회석에 비봉이 참여하지 않는 곳이 없다. 률(律)은 가야금, 양금 등이 제일 익숙하며 입무, 무고, 안녕무 등의 춤도 일등으로 지목하겠더라.
“어찌해서 기생 노릇을 하려고 나왔냐 물으시니 말씀이올시다마는 저는 본래 그 뜻이 없었는데 늙은 부모가 곤궁하게 지내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내 몸은 희생에 이바지하더라도 부모나 편안히 공양하자는 뜻이올시다.”
“아이고, 말씀 마시오. 몇 해를 기생 노릇해보니까 참 못할 것이 그것입디다. 어떤 때는 눈물이 솟아날 때도 많고 한심할 때도 많습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이 나를 「우지」라고 별명을 지었지요. 하하하.”
【每日申報. 藝壇一百人(一).비봉 1914.01.28.】
– 상합(相合): 서로 잘 맞음.
– 정랑(情郞): 남편 이외의 남자를 말하나 여기서는 남편으로 사용한 듯.
– 내지(内地): 일본 본토.
– 광도현(廣島縣): 히로시마현.
– 노류장화(路柳墻花): 화류계 여성이나 기생을 뜻함.
– 미진(未盡)한 세연(世緣): 아직 다하지 못한 세상사.
– 이소부시(磯節): 일본 3대 민요 중 하나.
– 사노사부시(さのさ節): 메이지 30년(1897) 무렵부터 유행한 속요.
– 곡교(曲橋): 천호동의 옛 지명.
– 률(律): 율. 음악을 뜻한다.
– 우지: 걸핏하면 우는 아이, ‘울보’.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