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수도관이 터지자 빨래터로 변한 서울거리
현재 한국은 상수도 보급률이 99.3%(환경부 2019년 기준)에 이르며 집집마다 깨끗한 물이 안 나오는 곳을 찾기가 힘든 국가다.
가끔 다큐멘터리에서 아프리카 빈국의 사람들이 생활용수를 긷기 위해 먼 거리를 걷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아래의 기사 속 풍경을 보면 한국 역시 6~70년 전에는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이 좋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전차로(電車路)에 빨래터
– 터진 수도관을 그대로 방치
전차와 버스가 오고 가는 수도 서울의 대로 한복판에 때아닌 『빨래터』 가 벌어져 달리는 차량의 경적도 들은 체 만 체 아낙네들이 비누거품을 뿜어가며 빨래 주물르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는 시내 서대문구 신문로 서울고등학교 바로 앞 전차 길목인데 수일 전 지하의 수도 파이프가 터지자 토관 사이로 맑은 옥수가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여 이내 아스팔트 길 위에 아담한 시내를 이루어 준 것이다.
처음에는 오고 가는 아이들이 발목이나 축일뿐, 시 수도과에서도 아는지 모르는지 소식이 없더니 어제 21일부터는 약빠른 인근 계집애들 한두 명이 빨랫감을 들고 나와 쏟아지는 청수에 헹구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자 물기근에 허덕이던 인근 주민들도 연이어 빨랫감을 한 광주리씩 이고 『특설·빨래터』 로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연달아 모여들고 있다. 【동아일보 1955.07.22】
1955년 7월, 서울고등학교 앞의 전차길 수도 파이프가 터져 개천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까지는 요즘도 흔하지는 않지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계속 물이 흐르자 동네 아낙네들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빨래를 하기 시작한 것. 며칠씩이나 시 당국에서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고, 도시 주민들이 아스팔트 대로에서 빨래를 하는 것도 황당한 풍경이다.
▲ 파이프 손상으로 생겨난 물웅덩이에서 빨래하는 부녀자들.
하지만 당시는 수도가 나오지 않는 집은 빨래를 하기 위해 우물가를 찾아야 했고, 그것도 없으면 한강변이나 지천까지 나가야 하는 시대였다.
▲ 1954~1956년, 한강변의 빨래터 【사진: John Selwyn Cornes】
주부들에게는 ‘빨래’ 하나만으로도 하루해가 훌쩍 넘어가는 주요 일과였던 때에 도심에 생겨난 ‘맑은’물은 체면 따위를 넘어서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이 수도관 파열 기사를 통해 상수도와 세탁기가 현대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여가시간을 안겨주었는지도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