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조각상들의 진짜 모습
첨단기법으로 찾아낸 채색의 흔적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조각상이나 건축물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레 백색의 대리석이 연상된다.
하지만, 독일의 고고학자 빈첸츠 브링크만(Vinzenz Brinkmann)과 울리케 코흐 블링크만(Ulrike Koch-Brinkmann)은 이런 고대 예술에 대한 편견을 과학기술을 통해 전환시켰다.
이들은 고대 예술가들의 진정한 의도와 작품들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여러가지 첨단기법을 동원하였다.
우선 조각의 표면에 자외선을 조사(線照)해 본 결과 매끄럽지 않은 표면에서 도료의 흔적을 발견해냈고, X선 형광분석 및 적외선 분광법으로 사용된 도료의 유형을 분석해내는 데 성공했다.
▲ 자외선 카메라에 나타난 흔적
여기에 고대 문헌을 참고하고 과학적 분석을 더한 결과, 조각상에 사용된 도료는 계란과 왁스 등의 천연재료와 광석의 혼합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 남아있는 도료의 흔적
다행히 도료의 가장 안쪽 층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빨간색과 파란색은 다른 색깔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많아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 명확하게 확인된 색깔 외에는 추측으로 근사치를 대입하였다.
그렇다면 고대 조각상들은 왜 모두 헐벗은(?) 백색으로 변해버렸을까. 바로 오랜 세기동안 풍화되고 침식한 것이 원인이다.
일전에 다루었던 KFC 창업주 이야기(관련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강에 빠진 지 겨우 15년이 채 안 된 커넬 샌더스(Colonel Sanders)의 동상도 페인트가 완전히 벗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그와 비교해 보면 2000년이 훌쩍 넘은 고대 조각상들의 채색이 풍화에 벗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
▲ 커넬 샌더스(KFC 창업주) 동상
울리케 코흐 블링크만 박사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만약 시간여행으로 고대 도시나 묘지, 혹은 성스러운 장소에 갈 수 있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백색의 무미건조한 대리석들이 아닌 ‘도료가 칠해진 대리석 건물과 화려한 조각, 화려한 청동상과 금박이 입혀진 세계‘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사실 19세기 초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적들에서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던 시기만 해도 조각상들의 표면에 여러 가지 도료들의 흔적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이런 흔적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흔적들은 빛과 공기에 노출되면서 완전히 사라졌고, 나머지는 부지런한(?) 고고학자들에 의해 깨끗하게 닦여나갔다.
그렇다면 첨단 기법으로 재현된 고대 예술품들의 진짜 모습을 아래에서 감상해보자.
고대 예술품들의 초기 모습
▲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석상(Augustus of Prima Porta)
▲ 칼리굴라 황제(Emperor Caligula) 두상
▲ 렘니언 아테나(Athena Lemnia)
▲ 아파이아 신전의 아이기나(Aphaiatemplet Aigina)
▲ 캇셀의 아폴로 상(Kasseler Apoll)
▲ 아리스티온 묘비(Grave Stele of Aristion)
▲ 아파이아 신전의 서쪽 페디먼트 왼편, 스키타이 궁수
▲ 페플로스의 코레(Peplos Kore)
▲ 알렉산더의 석관
▲ 이스탄불 박물관의 청동 두상
▲ 이스탄불 박물관의 청동 두상
▲ 아테나 상
▲ 루트라키(Loutraki)의 석회암 사자
예술장르로 이어진 오해
사실 백색의 순수하고 위엄 있는 조각상을 보아오던 우리의 눈에 비친 채색된 조각상들은 백화점의 마네킹이나 무속신앙의 화려한 상(像)들이 연상될 정도로 너무나 화려하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순수한 백색 표면이 예술의 기준이라고 확신한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니었다.
▲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 역시 고대 조각상들의 미학을 흠모했다.
세월로 인해 색상이 사라진 예술품들은 시대의 표준이 되었고, ‘진정한 예술은 고대 조각상처럼 순수하고 아무런 색상도 장식도 없어야 한다‘는 오해가 시작된 것이다.
▲ 고대 조각가가 다비드상을 만들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신들의 모습을 최대한 인간과 가깝게 표현해내려는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고대 예술가들의 스타일이 오랜 세월로 인해 뜻하지 않게 왜곡되었지만 이런 오해가 백색의 순수한 조각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