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를 증명한 오스카 이야기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A cat has nine lives)’ 라는 유명한 영어 속담이 있다.
빠른 눈치와 뛰어난 처세술로 위기를 유유히 헤쳐나가는 경우를 이르는 것으로,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도 뛰어내려도 아무렇지 않거나 아슬아슬한 곳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이 만들어낸 문장이다.
이 속담 때문에 고양이는 예로부터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험난한 바다를 건너는 배에 탑승시키는 동물이었다. 물론 식량을 갉아먹고 배를 파손하는 쥐를 잡는 실용적인 목적과, 특유의 귀여운 모습으로 지루한 항해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것도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 1941년 8월, 대서양회의에 참석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프린스오브웨일스호의 함재묘 ‘블랙키(Blackie)’가 미국 구축함으로 넘어가려는 것을 막고 있다.
이른바 함재묘(Ship’s cat)라고 불리는 녀석들의 사진과 자료는 항해의 역사만큼이나 무수히 남아있다. 그중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독일 해군의 함정에 탔던 ‘오스카(Oscar)’라는 고양이는 3번의 침몰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일화를 가지고 있다.
영국 템스강 인근 그리니치에 위치한 국립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 NMM)에는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고양이 그림이 있는데, 바로 이 고양이가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진 오스카이다.
▲ 비스마르크호의 고양이, 오스카(Oscar, the Bismarck’s Cat) by Georgina Shaw-Baker ©National Maritime Museum in Greenwich
검은 코트에 흰색 무늬를 한 이 고양이는 1941년 5월 18일,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Bismarck)호에 처음으로 탑승했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 후인 5월 27일에 발생한 영국 전함과의 전투로 인해 비스마르크호는 침몰하였고, 2200명의 탑승자 중에 단 116명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비스마르크호의 고양이는 바다 위의 뜬 나무판자에 무사히 올라가 있다가 지나가던 영국 구축함 코삭호(HMS Cossack)의 수병에게 구조되었고 이때 ‘오스카’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호(Bismarck)
하지만 비스마르크호가 침몰된 지 불과 6개월 후, 코삭호는 독일 잠수함 U-563의 어뢰에 맞아 작동 불능이 된다. 최악의 날씨 조건으로 인해 견인되지 못한 코삭호는 결국 침몰하였지만, 아직 목숨이 여유롭게 7개나 남은 오스카는 이번에도 살아남아 다른 배로 옮겨탔다.
▲ 영국 구축함 코삭호(HMS Cossack)
오스카가 세 번째로 탑승한 배는 영국 해군의 아크로열 항공모함(HMS Ark Royal)이었다.
영국 수병들은 수많은 군인들이 죽어간 전투와 침몰에서도 살아남은 오스카에게 ‘가라앉지 않는 샘(Unsinkable Sam)’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귀여워했다.
아크로열은 항공모함이었던 만큼 더 이상 오스카에게 닥칠 위험은 없었을 것 같았지만 1941년 11월 14 일, 독일 잠수함 U-81의 어뢰에 맞아 지브롤터 해협에서 침몰하게 된다. 다행히도 항공모함이었던 관계로 느린 속도로 침몰하였고 날렵한 오스카는 물에 떠다니는 판자를 발견하고 명성(?)에 걸맞게 판자에 찰싹 달라붙어있다가 구조작업을 펼치던 라이트닝호(HMS Lightning)와 리전호(HMS Legion)에 의해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 아크로열 항공모함(HMS Ark Royal)
가라앉지 않는 오스카의 항해는 여기까지였고, 이후 위험한 바다 생활을 접고 조기은퇴하여 육지로 돌아왔다. 스스로는 행운을 연거푸 거머쥐는 고양이였지만 수병들에게 오스카는 점점 ‘침몰을 불러들이는 불길한 고양이’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오스카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선원에게 입양되어 그의 고향에서 쥐를 잡는 일에 매진했다. 나머지 6개의 목숨은 써먹을 일 없이 오스카는 집고양이다운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가 1955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느낌을 주는 9Lives라는 사료브랜드도 있다. ©9Lives® Cat Food
한편, 흥미로운 사실은 국제 신호기의 “O“는 오스카(Oscar)이며 이것은 ‘Man Overboard’ 즉 해상조난자를 의미한다. 아마도 처음 발견한 코삭호의 수병이 조난된 고양이에게 걸맞은 이름을 지어준 것일 수도 있지만 여러 번 계속해서 이름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점은 속된 말로 ‘닉값 한다‘는 느낌이다.
▲ 국제 신호기(International maritime signal flags)
또 오스카는 3번째 탑승한 아크로열의 침몰 이후 함재묘 업계에서 완전히 은퇴했지만, 당시 그를 구조했던 라이트닝호는 1943년에, 리전호는 1942년에 침몰하였다. 전시라고는 하지만 놀랍게도 오스카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5척의 배가 모두 침몰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적절한 시점에 은퇴한 것도 또 한 번 위기를 벗어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