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09) 1942년,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설치된 철조망
1942년, 하와이 오아후 섬(O’ahu) 로열 하와이안 호텔((The Royal Hawaiian) 앞 와이키키 해변(Waikiki Beach)에 철조망 울타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상륙에 대비한 45km 길이의 방어선으로, 이 시기 로열 하와이안 호텔은 미 해군의 본부가 되어 해변을 사용하는 것도 전시에는 장병들에게만 허락되었다.
1941년 12월 7일, 2천 명 이상의 미국인이 사망한 진주만 공습(The Attack on Pearl Harbor)으로 관광천국이었던 하와이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크게 바뀌었다. 진주만 공습이 발생한 지 몇 시간 만에 하와이 관광은 당연히 전격 중단되었고, 섬 전체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 일본의 진주만 공습. 태평양전쟁 중 일본군의 동남아시아에서의 진군 속도는 대단히 빨랐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는 ‘진주만 공습은 미국 본토 침략의 예고편’이라는 공포가 엄습했고, 하와이 해변과 마찬가지로 미국 본토의 해안가에도 철조망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당시 하와이에는 일본계가 인구의 무려 37%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기업가, 교사, 정치인으로 하와이 사회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즉 본토에서는 일본계를 분리해 수용소로 보냈지만 하와이에서는 이들을 모두 수용소로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백인, 원주민, 일본인, 중국인, 필리핀인 모두가 똑같은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철조망으로 격리된 하와이 해변과 거리
민간인들은 공습대피소를 위한 벙커를 파는 것이 의무화되었고, 사진에서처럼 해변은 물론 양수장, 전기 설비, 정부기관 등 모든 곳에 철조망을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 모든 하와이 시민들은 지문을 채취 당해야 했고, 발급된 신분증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휴대해야 했다.
▲ 발급된 공식 신분증
주민들의 일상은 낮에는 자유로웠지만, 야간에는 등화관제를 위해 집의 창문을 까맣게 칠했으며 전기가 차단되고 통행금지까지 내려졌다. 허가받지 않고 밤거리를 나다니는 민간인은 총에 맞을 각오를 해야 했고, 공무상 허용된 자동차도 헤드라이트를 검게 칠했다.
섬의 식료품은 배급제로 분배되었고, 음주가 금지되면서 술집도 문을 닫았으며, 관광객으로 넘쳐났던 호텔들은 미군의 숙소가 되었다. 이와 같은 계엄령은 진주만 공습 이후 3년간이나 이어졌다.
▲ 계엄령 기간 동안 화생방 교육을 받는 하와이 어린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