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귀족의 딸 ④ 민병석의 딸, 민임원
민병석(閔丙奭)은 경술국적(1910)의 한 사람으로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하사 받았으며, 오늘날 대표적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과 사돈지간이기도 했다.
온라인에는 민병석의 자식으로 자작 작위를 물려받은 장남 민홍기(閔弘基, 1883~1951)와 대한민국 최장수 대법원장을 지낸 차남 민복기(閔復基, 1913~2007)만이 기록되어 있다.
▲ 민병석 (閔丙奭, 1858~1940)
하지만 그에게는 딸들도 있었다.
민병석의 딸 중 차녀인 민임원(閔壬媛)은 1926년 신문지상에 실렸는데, 당시 15세로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 배화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조선귀족의 자제답게 일본인들이 다니는 소학교를 다녀서 일본어가 상당히 능통했다고.
오늘은 전에 궁내부 대신을 역임하여 이제는 자작의 영위를 가지고 있는 민병석 씨의 막내 따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양장에 싸여있는 그 아담한 맵시를 보십시오! 이 작은아씨가 얼마나 귀엽게 길러진 것을 아실터이니.
이름은 민임원(閔壬媛)이요. 금년 15세의 꽃피려는 처녀이니 순정을 하소하는 그 표정 그 태도. 실로 한가히 여년을 보내시는 그 아버님에게는 다시없는 보배이요. 한가한 가정에는 둘도 없는 천사일 것이올시다.
초등교육은 내지인 소학교에서 마친 관계로 말이 능통하며, 지금은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니 그의 탁월한 필재(筆才)는 선생을 놀라게 한다고 합니다.
시내 원동 초입 고주대문(高柱大門) 높은 집에 세상모르고 자라나는 작은아씨에게 다시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
오직 밤에는 복습하다 피곤한 몸을 어머님의 품에서 쉬고, 낮에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아버님의 무릎 앞에서 재롱을 피워가며 세상에서 꽃이 피든 단풍이 들든 임원양에게는 딴 세상 소문이며 별세계의 일일 것이올시다. 임원양에게는 또다시 어린 동생 한분이 있어서 형제간 우애가 또한 두터워 항상 집안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매일신보 1926.11.12】
▲ 민임원 (閔壬媛, 1911~?)
계산을 해보면 민병석의 나이 53세에 보게 된 늦둥이 딸로, 장남인 민홍기와는 나이 차이가 28년이나 나기 때문에 모친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
민병석은 부인을 4명 맞았으며, 슬하에 2남 4녀[아들(민홍기)-딸–딸(민임원)-딸–아들(민복기)-딸]를 두었다.
• 부인 1: 청송 심씨 심경섭(沈卿燮)
• 부인 2: 함평 이씨(咸平李氏, 1862~1885)
• 부인 3: 연안 차씨(延安車氏, 1884~1951)
• 부인 4: 경주 이씨(慶州李氏, 1895~1978)
나이대로 볼 때 민임원의 생모는 연안 차씨나 경주 이씨일 것이다.
민임원의 결혼
위 기사에서는 늦둥이로 사랑을 받으며 학교에서는 글재주도 좋아서 신여성으로 학업을 이어갈듯한 인재로 소개되었으나, 20세기 초 귀족 가문의 여성답게 불과 3년 후인 18세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의 상대는 임면순(任冕淳)의 장남 임성빈(任性彬)으로 1929년 1월 4일 정오, 당대의 부유층과 귀족들이 결혼식을 올리던 조선호텔에서 식을 거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