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평양명기’ 장연홍의 마지막 흔적 ①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까지 조선반도 최고의 기생 중 하나로 알려진 장연홍(張蓮紅). 그녀는 정점에서 돌연 상해로 떠나 영원히 잠적해버린 사연 때문에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현재까지 미스터리한 기녀로 남아있다.

 

장연홍에 대한 마지막 흔적은 조선중앙일보의 세편짜리 기사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호치(丹唇皓齒)와 설부화용(雪膚花容)으로 풍류랑(風流郞)을 뇌쇄(惱殺)하던 평양의 명기(名妓) 장연홍은 왜 상해로 갔는가? ①


해동의 승지강산(勝地江山)이오 금수(錦繡)강산의 유일한 명승지인 만큼 그 강산의 정기를 받아 사람이 나면 아름답고 뜻이 있으며, 더구나 이곳에서 나는 여자는 그 소질이 미려하고 자태가 선연(嬋娟)한 것이다.

이 같은 고운 미인이 대에 대를 이어 배출되기 때문에 평양은 고래(古來)로 색향(色鄕)의 별명이 있고, 북녀의 칭호를 독차지하였던 것이다.

 

만고의 신비를 감추고 평양 강산을 휩싸고 도는 대동강과 예부터 엄연히 솟아있어 성내를 굽어보는 목단봉이 어리석은 세상 사람을 눈 흘겨보는 듯이 묵시만년(默視萬年)하는 중에서, 한 떨기 꽃처럼 남모르게 피었다가 그 자취를 감춘 평양 명기 장연홍(22)을 싸고도는 한막극을 적어보기로 하자.

 

그녀는 상당한 가정에 외동딸로 태어나서 열아들 부럽지 않게 고이고이 자라났는데, 나면서부터 영리하고 설부화용(雪膚花容)은 아침이슬에 피어나듯이 고운지라 고이 길러 원앙의 짝을 찾아주고 일생을 의탁하려고 그야말로 불면 꺼질까 쥐면 터질까 염려하며 문자 그대로 금지옥엽같이 길렀었다.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까지 조선반도 최고의 기생 중 하나로 알려진 장연홍(張蓮紅). 그녀는 정점에서 돌연 상해로 떠나 영원히 잠적해버린 사연 때문에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현재까지 미스터리한 기녀로 남아있다. 1
장연홍(張蓮紅, 1911~?)


그러나 세상일은 뜻과 같지 않고 운명의 작희(作戲)는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는 것이다.

 

연홍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에 악착(齷齪)한 조물(造物)의 시기로 그의 부친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연홍의 부친은 사랑하는 아내와 철 모르는 딸을 이 세상 거친 물결에 던져둔 채 죽고 말았으니, 죽은 사람의 원통한 원한도 원한이려니와 뒤에 남아있는 혈혈(孑孑)한 모녀의 앞길이야 말로 암담하였던 것이다.

 

친척도 없고 장성한 아들도 없는 연홍의 어머니는 오직 연홍이가 얼른 크면 마음에 맞는 배필을 얻어주어 후생을 맡기고자 때때로 외로운 신세를 탄식하면서도 오직 연홍이가 장성하여 가는데 재미를 붙여, 길고 긴 가을밤이나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밤에도 잠시도 놀지 않고 남의 삯바느질과 정구지역(井臼之役)을 하며 그날그날의 호구(餬口)를 하였던 것이다.

 

평양이 승지라 하여도 기한(飢寒)이 도골(到骨)하고 조석으로 닥쳐오는 가난에는 적막한 강산에 지나지 않았다.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까지 조선반도 최고의 기생 중 하나로 알려진 장연홍(張蓮紅). 그녀는 정점에서 돌연 상해로 떠나 영원히 잠적해버린 사연 때문에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현재까지 미스터리한 기녀로 남아있다. 3


넉넉한 집 자손 같으면 8,9세부터 학교에 입학하여 장래의 희망을 부둥켜안고 몸을 닦고 마음을 길렀으련만, 연홍은 간구(艱苟)하고 쪼들리는 살림을 들여다볼 때면 감히 어머니에게 학교에 가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연갑(年甲)된 아이들이 책을 끼고 희희낙락하게 지껄이며 학창생활을 바라고 갈 때의 광경을 눈여겨보는 연홍의 어린 가슴에는 한없이 부럽고 눈물겨운 비애인지라, 보고 나면 철없는 가슴에 솟아오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여 돌아서서 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자 이것을 눈치챈 연홍의 모친은 딸의 장래를 위하여 자기의 일생을 희생하여도 좋다는 거룩한 모성애로 하루 두 끼밖에 못 먹는 자기 식사를 한 끼로 줄이고, 전보다 4~5시간이나 궂은일을 더하여 거기서 나오는 영세한 금액을 모아 연홍이 바라고 동경하던 배움의 길이 그 앞에 펼쳐졌으나 똑똑하고 속마음이 깊은 연홍은 자기 모친의 힘겨운 노동과 영양부족으로 인하여 야위어가는 그 얼굴을 볼 때면 또다시 그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이 같은 슬픔의 싹이 어린 가슴속에서 싹트고 자라나는 것을 어찌하리오?

 

연홍은 여기에서 자기 일생을 생각하는 것보다 늙은 편친(偏親)을 위하여 크나큰 결심을 하게 되었으니 그는 과연 무엇을 결심하였던고?

 

비로소 여기서 연홍의 금일 애화(哀話)를 빚어 내일 첫걸음의 움이 돋아난 것이다. (2편에서 계속)

【조선중앙일보 1933.08.06】

– 단순호치(丹唇皓齒): 붉은 입술과 흰 치아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비유
– 설부화용(雪膚花容): 눈처럼 흰 살결과 꽃처럼 고운 얼굴
– 풍류랑(風流郞): 풍치가 있고 멋진 젊은 남자
– 뇌쇄(惱殺): 애가 타도록 몹시 괴롭힘
– 선연(嬋姸): 몸맵시가 날씬하고 아름답다.
– 고래(古來): 예로부터
– 색향(色鄕): 미인이 많이 나는 고을
– 묵시만년(默視萬年): 묵묵히 일만년을 지켜봄
– 작희(作戲): 훼방을 놓다.
– 악착(齷齪): 잔인하고 끔찍하게
– 조물(造物): 우주의 만물을 만들고 다스리는 신
– 혈혈(孑孑):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 정구지역(井臼之役): 물을 긷고 절구질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살림살이의 수고로움을 이르는 말
– 호구(餬口): 입에 풀칠을 하다.
– 기한(飢寒): 배고픔과 추위
– 도골(到骨): 골수에 사무치다.
– 간구(艱苟): 가난하고 구차하다.
– 연갑(年甲): 나이가 같은 또래
– 편친(偏親): 홀로 된 어버이
– 애화(哀話):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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