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평양명기’ 장연홍의 마지막 흔적 ②

단순호치(丹唇皓齒)와 설부화용(雪膚花容)으로 풍류랑(風流郞)을 뇌쇄(惱殺)하던 평양의 명기(名妓) 장연홍은 왜 상해로 갔는가? ②

 

연홍이가 어느덧 14세가 되고 보니, 돋아 오르는 반달 같은 얼굴은 금수강산의 정기가 어린 듯이 곱고 아름다우니 차차 유혹의 손이 뒤를 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때가 때인지라 어머니의 굶주리는 경상(景像)과 집안 형편이 날로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는 연홍의 마음에 동요가 생길 때라 그녀는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거니와, 자기의 한 몸을 희생해 늙은 어머니의 심려와 걱정을 더는 동시에 황폐해지는 집을 가냘픈 자기 힘으로나마 붙들어 일으키려고 결심한 후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화류계로 나왔던 것이다.

 

이것에 분개한 장연홍 일파는 진두에 나서서 필사의 반항도 하여 보았고 모든 침해를 박차 보았으나 어찌하랴? 황금과 권력으로 내려 누르는 데는! 그들의 생명은 짓밟히고 말았던 것이다. 1
장연홍(張蓮紅, 1911~?)

 

단순호치(丹唇皓齒)와 설부화용(雪膚花容)은 연홍이 장성함에 따라 평양성중의 뭇 야유랑(冶遊郞)들의 눈을 황홀케 하였으며, 어린 듯 취한 듯한 아름다운 연홍의 쌍꺼풀진 눈, 사람을 금방 삼킬듯한 매력 있는 선웃음은 사람이 근처에도 가보기도 어려울만한 고상하고도 엄숙한 자태로 더욱 그녀의 이름은 높았던 것이다.

 

속 못차리는 뭇 남아들은 연홍의 절개를 꺾어보고 그 아리따운 몸을 희롱하여 보고자 천금을 아끼지 않고 그녀의 집이나 그녀가 있는 요릿집을 막론하고 모였고, 갖은 유혹과 단말로 같이 살기를 간청한 풍류남아도 한둘이 아니었으나 그녀는 끝끝내 말을 듣지 않고 유혹과 꼬임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녀의 철석같은 마음은 더욱 지조를 섬기고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기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사정으로 기생의 몸이 된 손위 기생이 있었으니, 그녀는 강명화(지금은 들어앉아 참답게 살림을 하는 관계로 가명을 씀). 늘 같은 설움에 부대끼는 처지라 연홍을 대할 때마다

 

• “우리가 비록 현실은 악착(齷齪)하고 침 뱉는 기생의 몸이 되었을 망정 나의 지조를 팔고 살을 베어주는 천착(舛錯)한 행동을 하지말고 끝까지 싸워보자!”

•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이상이 있고 우리가 먹은 결심이 있으니 그것을 관철하기까지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꿋꿋이 나아가서 사람다운 짓을 해보자!”

 

라는 격려와 위로에 연홍은 뜻과 마음을 바쳐 날로 독서와 수양을 게을리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장래를 생각하고 앞길을 헤아려 그녀는 눈물과 한숨으로 꽃다운 청춘이 화류 풍상에 시달리는 상황을 스스로 개탄하며 한시라도 급히 그 자리를 떠나려고 결심하여 왔었던 것이라 한다.

 

이것에 분개한 장연홍 일파는 진두에 나서서 필사의 반항도 하여 보았고 모든 침해를 박차 보았으나 어찌하랴? 황금과 권력으로 내려 누르는 데는! 그들의 생명은 짓밟히고 말았던 것이다. 3


때가 온것인지? 아니면 그의 반생을 더욱 악착한 수렁으로 집어넣으려 하는 것인지? 돌연 작년부터 그녀가 몸을 담고 있는 기생 권번이 어떤 자본벌(資本閥)의 책동으로 소위 주식회사로 변경이 되면서 횡포와 행패가 심하여졌다고 한다.

 

이것에 분개한 장연홍 일파는 진두에 나서서 필사의 반항도 하여 보았고 모든 침해를 박차 보았으나 어찌하랴? 황금과 권력으로 내려 누르는 데는! 그들의 생명은 짓밟히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횡포한 무리들의 신세력은 마치 밥을 보고 덮치는 맹수와 같이 그 형세가 심해지며 강압과 잔인한 행동을 일삼으니 전부터 마음을 같이 하고 뜻을 합했던 동무 기생들은 마침내 그들의 이깜이 되어 하나둘씩 흩어지고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이것을 본 연홍은 슬픔과 분함을 참다못해 이 기회에 몸을 깨끗이 씻고 마음먹었던 이상이나 실현시키자는 결심으로 단호히 평양 기적(妓籍)에서 몸을 빼는 동시에, 정들고 몸 붙였던 고국 강산 평양을 등지고 연만(年晩)한 어머니와 정든 동지 명화도 뿌리치고 표연히 해외로 떠나게 되었으니, 과연 그녀는 무엇을 하러 상해로 갔으며 그녀의 이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3편에서 계속)

【조선중앙일보 1933.08.08】

– 경상(景像): 꼴이나 몰골
– 단순호치(丹唇皓齒): 붉은 입술과 흰 치아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비유
– 설부화용(雪膚花容): 눈처럼 흰 살결과 꽃처럼 고운 얼굴
– 야유랑(冶遊郞):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노는 젊은이
– 단말: 듣기에 좋은 말. 달콤한 말
– 악착(齷齪): 잔인하고 끔찍하게
– 천착(舛錯): 상스럽고 더러운
– 자본벌(資本閥): 재벌
– 이깜: 미끼
– 기적(妓籍): 기생이 소속된 곳
– 연만(年晩): 연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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