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01일

1931년, 독일과 소련의 비행선을 이용한 북극해 공동탐험

지난 2016년, 북극해의 프란츠 요제프 랜드(Franz Josef Land, 제믈랴프란차이오시파 제도)의 알렉산드라랜드 섬(Alexandra Land)에서 나치 독일의 비밀기지가 발견된 바 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1931년 7월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시행된 독-소 원정대의 출발부터 탐사의 기록을 담고 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1
▲ 1931년,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Friedrichshafen)의 격납고에서 LZ 127 그라프 체펠린(LZ 127 Graf Zeppelin)의 옆에 서있는 기술자들.

 

중앙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체펠린 비행조선 유한책임회사(Luftschiffbau Zeppelin GmbH, 루프트시프바우 체펠린 게엠베하)의 경영자이자 ‘역사상 최초의 세계일주‘를 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선장 후고 에케너(Hugo Eckener, 1868~1954)이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3
▲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개방된 해치 아래에 놓인 원정대의 장비.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5
▲ 북극원정에 쓰일 썰매를 비롯한 장비들. 탐사비용은 독일과 소련이 발행한 기념우표의 판매수익으로 충당되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7
▲ 북극해 탐험을 앞두고 경로를 논의하는 대원들.

 

가장 좌측에 앉아있는 사람이 독일의 의사이자 탐험가인 루트비히 콜라센(Ludwig Kohl-Larsen, 1884~1969),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소련의 기상학자 파벨 몰차노프(Pavel Molchanov, 1893~1941), 연필 같은 것을 들고 앉아있는 남자가 엔지니어 크누트 에케너(Knut Eckener, 1902~1968)로 선장 후고 에케너의 아들이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9
▲ 비행선에서 본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의 전경.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11
▲ 상공에서 본 포메라니아(Pomerania) 들판. 이곳은 19세기 프로이센이 점유하였으나 1차 대전 이후 폴란드로 귀속되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13
▲ 상공에서 촬영한 동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Koenigsberg) 전경.

 

중앙에 보이는 쾨니히스베르크 성(Königsberg Castle)은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성벽만 남고 파괴되었고, 1968년에 소련의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의 명령에 따라 철거되어 지금은 사라졌다. 쾨니히스베르크도 포츠담 회담으로 소련에 할양되면서 현재는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가 되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15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Winter Palace).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24년부터 1991년까지 ‘레닌그라드(Leningrad)’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17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변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Petropavlovskaya Fortress).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19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 북동부를 흐르는 스비리 강(Svir River)에 목재가 떠 있다. 당시 이곳에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라크(gulag)가 있었던 만큼 죄수들이 벌채한 것으로 보인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21
▲ 바렌츠 해(Barents Sea)에 나타난 빙산.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탐사비행은 총 134시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중 북극해에서의 비행은 116시간이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23
▲ 바렌츠 해(Barents Sea)를 가득 메우고 있는 빙하.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25
▲ 프란츠 요제프 랜드(Franz Josef Land, 제믈랴프란차이오시파 제도)의 후커 섬(Hooker Island) 앞에 정박해 있는 핀란드의 증기 쇄빙선 ‘보이마 호(Voima)’. 보이마 호는 1944년 9월 19일, 모스크바 정전협정의 결과로 소련 측에 양도되어 ‘말리긴 호(Malygin)’로 개칭되었다.

 

당시 보이마 호에는 이탈리아의 극지탐험가 움베르토 노빌레(Umberto Nobile, 1885~1978)가 타고 있었다. 북극해에 착륙한 그라프 체펠린은 보이마 호와 120kg의 기념품을 서로 교환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27
▲ 노바야제믈랴 제도(Novaya Zemlya, Но́вая Земля́)의 해안 풍경.

 

노바야제믈랴 제도는 1961년 10월 30일, 소련의 핵폭탄 중 가장 강력했던 차르 봄바(Tsar Bomba)의 실험이 시행된 곳으로 유명하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29
▲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북동쪽에 있는 산맥.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31
▲ 노바야제믈랴 제도에 위치한 쇼칼스키(Shokalsky)해협 지역의 빙하.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33
▲ 노바야제믈랴 제도 근처 북대서양 해안의 아름다운 빙하.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35
▲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동쪽 해안을 상공에서 촬영한 모습.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37
▲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세베르니 섬(Severny Island, 북섬)과 유즈니 섬(Yuzhny Island, 남섬) 사이를 흐르는 강. 마토치킨 해협(Matochkin Shar)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39
▲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세베르니 섬과 유즈니 섬을 가르는 마토치킨 해협(Matochkin Shar)의 입구.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41
▲ 노바야제믈랴 제도 마토치킨 해협(Matochkin Shar)을 수직촬영한 모습. 해수면에 그라프 체펠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43
▲ 그라프 체펠린에서 기상관측용 풍선을 내려보내기 직전의 모습.

이 장비는 오른쪽에 있는 소련의 기상학자 파벨 몰차노프(Pavel Molchanov)가 발명한 것으로 대기에서 기압, 온도, 습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45
▲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세베르니 섬(Severny Island) 상공에서 투하되는 기상관측용 풍선.

 

탐사 중 총 4개가 투하되었으며, 역사상 최초로 북극 성층권 여러 곳의 기상정보를 측정해 비행선으로 전송하였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47
▲ 북 시베리아 타이미르반도(Taymyr Peninsula)의 늪지대.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49
▲ 타이미르반도의 브리랑가 산맥(Byrranga Mountains).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51
▲ 타이미르 반도의 툰드라 지대 풍경. 아래쪽에 비행선의 거대한 그림자가 보인다.

 

LZ-127 그라프 체펠린은 당시 항공기술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총길이 236.6m, 폭 30.5m, 높이 35.5m로 세계 최대의 크기를 자랑했으며 530마력의 마이바흐 엔진 5기는 시속 100km 이상의 순항속도로 10만 km의 거리를 날 수 있게 해 주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53
▲ 세계 최북단으로 알려진 타이미르 반도의 첼류스킨 곶(Cape Chelyuskin).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55
▲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곤돌라에 있는 선장 후고 에케너(Hugo Eckener) 박사와 대원들.

 

북극 910km 지점까지 접근한 원정대는 역사상 최초로 프란츠 요제프 랜드(Franz Josef Land, 제믈랴프란차이오시파 제도)를 정밀하게 촬영하고 측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섬도 발견하는 등 지구물리학 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이루어냈다. 당시의 성과는 만약 비행선이 아니었다면 많은 인원을 육상으로 투입해 수십 년간의 연구를 해야 얻어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57
▲ 앉아있는 후고 에케너 박사와 촬영을 위한 카메라를 곤돌라에 설치하는 대원. 항공사진은 수직 촬영과 20도 각도로 촬영할 수 있게 설치되었다.

2차 대전 중에 건설된 이 기지와 북극해에서의 나치 U보트(Unterseeboot)의 활약은 '116시간의 과학탐사비행'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1931년 7월,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의 북극해 탐사'가 그것이다. 59
▲ 설치된 카메라로 항공사진을 촬영하는 독일의 건축가이자 사진작가 월터 보르하르트(Walter Borchard, 1887~1948).


당초 10만 km를 비행하여 소련의 레닌그라드에 착륙할 예정이었던 LZ 127 그라프 체펠린은 3만 km 정도만 비행한 뒤 곧바로 베를린으로 귀환했다. 선장 후고 에케너는 ‘기상악화‘를 이유로 들었으나 수많은 항공사진과 문서들이 베를린에 내려졌고 석연치 않게 ‘분실‘되었으며, 소련은 탑승한 자국의 과학자들이 직접 얻은 데이터만 건질 수 있었다.

 

당시 LZ 127 그라프 체펠린이 얻어낸 자료들은 나치 정보요원에 의해 치밀하게 연구되었으며 북극의 비밀기지를 짓는데 유용하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