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12] 임성구(林聖九, 연극배우)

어려서부터 내지(일본) 사람과 추축(追逐)하여 듣고 보는 것으로 일본말을 능히 마음대로 동함에 이르렀으나 한 가지 병통은 일찍이 학식을 배우지 못함이라.

 

15~6세에 이르러서는 진고개 근처에서 상업을 시작하여 여러 해 동안 간난신고를 겪다가 명치 44년(1911년)부터는 홀연 감동한 곳이 있어 신파연극(新派演劇)을 조직하여 남대문 밖 어성좌(御成座)에서 개연하였다.

 

그때에 연극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에서 처음 있던 일이요, 또는 신파연극이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적은 고로 일반 사람이 환영하는 자 적었지만 임성구의 견인분발하는 마음은 연속하여, 연극으로 성공할 생각을 가진 후 3~4년을 지낸 오늘날에야 비로소 신파연극이 어떠한 것인가를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니, 연극의 선무는 차치하고 연극의 창시는 가위 혁신단(革新團)을 원조라 하리로다.

 

그때에 연극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에서 처음 있던 일이요, 또는 신파연극이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적은 고로 일반 사람이 환영하는 자 적었지만 임성구의 견인분발하는 마음은 연속하여, 연극으로 성공할 생각을 가진 후 3~4년을 지낸 오늘날에야 비로소 신파연극이 어떠한 것인가를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니, 연극의 선무는 차치하고 연극의 창시는 가위 혁신단(革新團)을 원조라 하리로다. 1
▲ 임성구(1887~1921)

 

금년이 28세로 재능과 기예는 가위 신배우의 기풍골을 가졌다 하겠으나, 학식을 닦지 못하여 언어 행동에 무식을 노출함이 한 가지 결점이라 하겠으되, 신분을 가지기는 극히 신중하여 중목소시에 추루한 혐의를 남에게 받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임성구의 항상 주의하는 바이요 또는 가상한 일이라 하겠더라.

 

이후로도 전일의 굳센 마음을 굴하지 않고 용맹스러이 나아가면 성공은 자재기중이라 하리로다.

【매일신보 1914.02.11】

– 추축(追逐): 친구끼리 서로 오가며 사귐
– 병통(病통): 한 가지 결점
– 진고개: 서울 중구 명동에 있었던 고개. 현재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 간난신고(艱難辛苦): 몹시 힘들고 쓰라린 고생
– 어성좌(御成座): 남대문 밖에 있던 일본인 극장
– 견인분발(堅忍不拔): 굳세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않음
– 선무(扇舞): 근래에 창작된 신무용(新舞踊)의 하나
 혁신단(革新團): 한국 최초의 신극 단체인 동시에 신파극단
– 중목소시(衆目所視):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보고 있는 상황
– 추루(醜陋): 더럽고 지저분함
– 전일(前日): 일정한 날을 기준으로 한 바로 앞 날
– 자재기중(自在其中): 그 속에 저절로 들어있음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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