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하마를 생태계에 도입할 뻔한 이야기
1900년대 초, 미국은 경제발전과 함께 해외로부터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도시의 규모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로 인해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주식인 육류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축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를 무작정 늘리는 것은 국토의 사막화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동시에 미국의 루이지애나주는 해외에서 유입된 ‘워터 히아신스(water hyacinth)’. 흔히 ‘부레옥잠‘으로 알려진 수상식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 부레옥잠의 아름다운 꽃
1884년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일본 대표단이 가져왔다는 설이 있는 이 부상식물은 수면 위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저택의 정원과 도시공원의 연못을 장식했다.
부레옥잠은 강의 중금속과 오염원을 빨아들여 수질을 개선시키고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반면, 통제가 되지 않으면 재앙이 된다.
▲ 다년생인 부레옥잠은 추운겨울이 있는 한국에서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수질정화용으로 방류를 한다.
부레옥잠은 곧 엄청난 번식력으로 미시시피강을 비롯해 인근 수역의 수면을 덮었는데, 이로 인해 물의 흐름이 바뀌고 햇빛이 수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토종 수생식물들의 고사를 초래했다.
▲ 20세기 초, 플로리다 세인트존스 강을 덮은 부레옥잠
죽은 수생식물들은 썩으면서 물에 용해된 산소를 고갈시켜 어류들의 떼죽음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모기들에게는 부레옥잠의 줄기와 뿌리가 훌륭한 서식지가 되면서 질병의 근원지가 되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아이디어
미국 정부는 육군 공병대까지 동원해 수면에 뜨거운 증기를 뿌리거나 염산이나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보기도 했지만 부레옥잠은 살아남은 씨앗을 통해 금방 다시 자라났다.
▲ 선박의 진행까지 막는 부레옥잠 군단
이때 육류 부족과 부레옥잠 지옥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의회에 제출되었다.
1910년 3월 24일, 루이지애나주의 상원의원이었던 로버트 F. 브로사드(Robert F. Broussard)는 아프리카의 한 동물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며 법안을 상정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 하마 법안(American Hippo Bill, H.R. 23261)’이었다.
▲ 로버트 브로사드(Robert Broussard, 1864~1918)
브로사드의 논리는 간단했다. “25만 달러를 들여 아프리카에서 하마를 데려와 미시시피 강에 풀어놓기만 하면 녀석들은 부레옥잠을 먹어치울 것이고, 그렇게 살찐 하마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어서 그는 “아프리카에는 하마 고기 스테이크가 있으며, 그 맛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사이”라고 설명했다.
▲ 하마로 육류부족을 해결한다는 충격적인 법안을 소개한 만평
실제로 부레옥잠은 가축사료로도 쓰이고 대만이나 베트남에서는 요리의 재료이기도 하다. 하마 역시 잡식성이기 때문에 부레옥잠을 먹어치울 수 있을 것이고, 서식하는 곳도 물속이므로 가축들과 달리 육상 공간도 필요 없어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행운의 부결
하지만 만일 하마가 부레옥잠을 거들떠보지 않을 경우, 재앙이 해결되지 않은 채 재앙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었다.
또 아프리카 현지에서 하마는 사자나 악어보다 더 위험한 동물로 여겨진다. 초식동물로 분류되긴 하지만 매우 공격적이어서 현재도 하마가 인간을 공격해 사망하는 사건이 매년 일어나고 있다.
결국 여러 가지 우려로 브로사드의 법안은 부결되었고, 오늘날 루이지애나는 수십만 달러를 들여 부레옥잠 제거 작전을 주기적으로 벌이고 있다.
▲ 부레옥잠 제거작업을 하는 자원봉사자들
하지만 콜롬비아의 사례로 볼 때 미국이 하마를 도입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1980년대,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가 개인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 데려온 하마 4마리가 야생으로 풀려났는데 2022년 현재 130마리로 불어난 상태이다.(관련 글: 골칫거리가 된 마약왕의 하마)
이 하마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콜롬비아 보고타 북부 마그달레나강 인근 영역을 침범하는 동물과 인간들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데려온 하마의 후손들
콜롬비아 정부는 그동안 1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들여 중성화 수술과 피임약을 투입하였으나 개체수 제어에 실패했고, 결국 이 하마들을 살처분하지 않으면 10년 안에 4배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불과 40여 년 만에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하마 4마리가 130마리가 된 것을 볼 때, 만약 100년 전 미국에서 하마 법안이 통과되었다면 오늘날 미시시피 강은 하마 떼로 넘쳐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