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나치 독일소녀동맹(BDM) 활동 모습

1930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목표에 따라 14~18세의 젊은 여성들로 꾸려진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BDM)’이라는 청년여성조직이 생겨났다.

 

여러 단체를 통폐합하면서 서서히 세를 불려 가던 독일소녀동맹은 1936년 12월 1일에 제정된 ‘히틀러 청소년단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3제국의 모든 청년들은 의무가입을 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1944년에는 450만 회원이 등록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여성청소년 조직‘이 되었다.

 

아래의 사진은 가입이 의무가 된 1939년의 독일소녀동맹(BDM)이 활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1930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목표에 따라 14~18세의 젊은 여성들로 꾸려진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BDM)'이라는 청년여성조직이 생겨났다. 1
▲ 제복을 입은 ‘독일소녀동맹’의 회원이 양파 줄기를 손질하고 있다.

 

1939년 초, 독일소녀동맹의 회원수는 340만 명을 넘고 있었다. 의무가입 조항이 생겨난 것은 1936년이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많은 기업체와 기술자들은 나치 조직에 가입된 청년을 선호하면서 가입이 장려되고 있었다.

1930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목표에 따라 14~18세의 젊은 여성들로 꾸려진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BDM)'이라는 청년여성조직이 생겨났다. 3
▲ 1939년 9월, 농장에서 양파를 따는 어린 소녀들.

 

독일소녀동맹의 산하에는 10~14세의 여자어린이들을 위한 융마델분트(Jungmädelbund, JM)라는 예비단체도 있었다.

1930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목표에 따라 14~18세의 젊은 여성들로 꾸려진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BDM)'이라는 청년여성조직이 생겨났다. 5
▲ ‘독일소녀동맹’의 회원들이 나란히 앉아 수확한 양파를 손질하는 모습.

1930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목표에 따라 14~18세의 젊은 여성들로 꾸려진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BDM)'이라는 청년여성조직이 생겨났다. 7
▲ ‘독일소녀동맹’에는 순수한 아리아인 혈통만의 가입이 허락되었다.

 

1935년 9월, 뉘른베르크 인종법이 통과되면서 독일사회에서는 친위대원, 공무원,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특정계층에 직업을 구하거나 당원으로 입학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아리아인 혈통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를 증명하는 ‘아리아인 증명서(Ariernachweise)’가 없는 인종은 2등 시민이 되었고 독일인과의 결혼도 금지되었다.

1930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목표에 따라 14~18세의 젊은 여성들로 꾸려진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BDM)'이라는 청년여성조직이 생겨났다. 9
▲ 발트해에서 열린 여름캠프에 참가한 두 명의 ‘독일소녀동맹’ 회원.

 

독일소녀동맹이 제공하는 여름캠프는 사회적 약자계층의 소녀들이 보조금을 받고 누릴 수 있는 휴가이기도 했다. 꼭 취약계층이 아니라도 가사를 미리 배운다는 개념으로 농장에 1년간 봉사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는 처음에는 자발적인 참여로 시행되었으나 1938년부터는 의무가 되면서 회원들은 농촌의 가정이나 농장에서 숙식하면서 일했다.

1930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목표에 따라 14~18세의 젊은 여성들로 꾸려진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BDM)'이라는 청년여성조직이 생겨났다. 11
▲ 1939년 9월, ‘독일소녀동맹’의 성악단이 베를린 예비군 병원의 부상병들을 방문해 음악을 들려주는 모습. 아돌프 히틀러의 초상 액자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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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9월, ‘독일소녀동맹’의 회원들이 베를린 예비군 병원의 부상병에게 꽃을 전달하며 위문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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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9월, 베를린 기차역에 도착한 피난민들의 유모차를 계단에서 내려주는 ‘독일소녀동맹’의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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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소녀동맹’의 회원들이 동부지역에서 베를린 기차역에 도착한 피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개전부터 독일소녀동맹은 조력자로 군사작전에 참여했으며 군 복무 외에도 부상병들에 대한 응급처치, 기차역에 도착한 피난민 돌보기, 폭격으로 집을 잃은 노숙자를 지원하는 봉사를 했다. 독일소녀동맹의 가입자 중 약 3천 명이 SS호위대(SS-Gefolge)가 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강제수용소의 여성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전후 살인죄로 기소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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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동부지역에서 온 피난민의 아기를 안고 있는 ‘독일소녀동맹’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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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소녀동맹’의 회원들이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육아 봉사를 하고 있다.

 

‘독일소녀동맹’의 교육 초점은 신체단련과 가사 훈련이었다. 표준적인 독일여성은 독일남성을 보완하는 형태로 교육받았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아리아인의 인종적 부활을 추구했다. 회원들에게는 ‘진정한 독일여성은 인종의 혈통과 순결을 수호하고 태어나는 아리아인의 후예들을 영웅으로 길러야 하는 것’이 공통의 목표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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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11월, ‘독일소녀동맹’의 회원들이 최전방에 있는 군인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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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소녀동맹’의 회원들이 크리스마스 마켓에 출품할 인형의 부분들을 연결해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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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소녀동맹’의 표준의상은 짙은 남색치마와 흰색 블라우스, 가죽끈이 있는 검은색 스카프였다. 스타킹은 무릎높이까지로 지정되었으며 액세서리는 반지와 손목시계만이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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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소녀동맹’ 회원들이 크리스마스 마켓에 출품할 제품에 색깔을 넣으며 마무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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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소녀동맹’회원이 장난감의 부속을 대패질하는 모습.

 

17~21세의 독일 여성들은 ‘믿음과 아름다움(Glaube und Schönheit)’이라는 단체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이는 독일소녀동맹의 나이 상한(18세)과 민족사회주의여성동맹(NS-Frauenschaft)의 가입연령인 21세가 되지 않은 여성들을 국가단체로부터 한시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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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장난감을 테스트하는 ‘독일소녀동맹’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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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자선행사장에서 행인에게 장난감을 판매하는 ‘독일소녀동맹’ 회원들.

 

‘독일소녀동맹’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5년 10월 10일 통제위원회의 법률 제2호 ‘나치 조직의 해산 및 청산‘에 따라 자산 몰수 및 해체되었다. 또한 동일한 명칭의 단체설립은 물론, 명칭이 달라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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