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북한 평양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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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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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1
▲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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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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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3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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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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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5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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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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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7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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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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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9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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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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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11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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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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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13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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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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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15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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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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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17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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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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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19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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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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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21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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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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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23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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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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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25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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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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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27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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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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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29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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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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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31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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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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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33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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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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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35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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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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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37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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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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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39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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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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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41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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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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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43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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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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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45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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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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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47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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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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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49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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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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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51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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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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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53
▲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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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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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55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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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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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57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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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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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59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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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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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61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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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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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63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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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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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65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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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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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67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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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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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69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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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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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71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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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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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73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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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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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75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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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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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77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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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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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79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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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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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81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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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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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83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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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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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85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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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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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87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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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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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89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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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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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91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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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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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93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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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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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95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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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근교 만경대(萬景臺)의 김일성 생가를 그리는 화가. ▲ 모란봉구역 천리마 동상. 1961년 4월 15일 김일성 49세 생일에 제막되었으며,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붉은 편지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 북한 내각 종합청사. 1954년에 건설되었으며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북한 건축물이다. ▲ 평양 보통문(普通門). 고구려 시대의 건축물로 북한의 국보 2호이다. (국보 1호는 평양성) ▲ 평양 보통문(普通門) 앞으로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 막 건설을 마친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 '경제건설과 국방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을 관철하자!'라는 체제경쟁 문구가 보인다. ▲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맑은 아이들. 뒤쪽에 두껍게 껴입은 군인의 모습과 대비된다. ▲ 건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 사진작가 앞에 모여든 여학생들. ▲ 천리마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책을 함께 보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와 아버지. 뒤쪽에 보이는 무궤도 전차는 '천리마 9.25형'으로 평양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는 1대만 남아있다.</p> <p>
▲ 현재 남아있는 천리마 9.25형 무궤도 전차 903호의 모습(2018년 4월 촬영). 김일성과 김정일이 시승했다는 이유로 차내에는 기념명판이 있으며 현재 350만 km 무사고 운행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차량 측면에 보이는 별들은 한 개당 5만 km 무사고 운행을 의미한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여학생들이 열을 맞춰 걸어가고 있다. 글자는 잘렸지만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임을 추측할 수 있다. ▲ 2015년에는 '김정은'으로 교체되었다. ▲ 평양에 남아있던 구식 가옥들. 멀리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 천리마 거리의 건물들은 당시엔 최신식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낡아 최고위급 간부들은 창광거리로 대거 이주하였다. ▲ 천리마거리는 1969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1985년에 완공되었으며, 건설 당시에는 '서성거리'로 예정되었지만 김일성이 천리마거리로 개명하였다.</p> <p>
▲ 평양 천리마거리 위치(붉은 선) ▲ 천리마거리의 현대식 아파트와 아직 건설 전의 구식 건물들이 남아있던 모습. ▲ 새롭게 건설된 천리마 거리 모습. 사회주의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선전포스터. 이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추가되었다. ▲ 조선혁명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문객. 현재 이 건물은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조선혁명박물관은 1972년 만수대 언덕 위로 이전하였다.</p> <p>
▲ 평양대극장 벽의 프로파간다 포스터.</p> <p>
▲ 평양대극장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p> <p>
▲ 모란봉극장(牡丹峰劇場).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김일성이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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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란봉 극장(牡丹峰劇場)정문. 정면에 보이는 조각은 노동자, 농민, 근로자를 상징한다. ▲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평양에 있는 군사박물관으로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17일에 개관했다. 1974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재개장하였다. ▲ 모란봉경기장. 1926년에 건설되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와 처음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에 모란봉 경기장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증축과 함께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다. ▲ 대동강과 옥류교(玉流橋). 옥류교는 대동강에 있는 6개 교량 중 하나로 1971년 당시 대동강에는 대동교(大同橋)와 옥류교 2개만 있었다. ▲ 1971년 11월 4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앞. 1964년 12월 건립 당시에는 평양 교예극장이었으나, 1989년 5월 인민군 교예극장으로 개칭되었다. ▲ 멀리서 본 인민군 교예극장(人民軍巧藝劇場) ▲ 가방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학생들. ▲ 검은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대생들이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 평양 거리를 걷던 모자들이 사진작가를 바라보고 있다. ▲ 평양의 거리에서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는 어린 자매. ▲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는 모습.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의 측면. 과외교육기관으로 1967년 4월 15일에 개교하였다. ▲ 평양 학생소년궁전 입장을 위해 모여있는 여학생들. ▲ 평양 학생소년궁전(平壤學生小年宮殿). ▲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에 서 있다. ▲ 평양 보육원의 아기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을 바라보고 있다. ▲ 보육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 회전놀이기구를 즐기는 유치원 어린이들. ▲ 북한은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아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로 인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재보다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 회전놀이기구에 아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직원. ▲ 사진작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을 북한 어린이들. ▲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자 북을 치며 쳐다보는 북한 어린이들.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p> 97
▲ 외국인 관광객 앞에서 미군 인형을 세워놓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반미 율동을 하는 모습. 이 사진들은 동독의 사진작가 클라우스 모겐스턴(Klaus Morgenstern, 1939~2012)이 촬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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