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46] 도홍(桃紅, 기생)

도홍이는 근본이 의주 태생으로 아홉 살부터 기생서재에 입학하여 다년간 가무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로 승무, 검무, 포구락은 남에게 양보치 아니하고 노래, 가사, 시조, 수심가, 역금, 잡가, 단가는 실로 명창이라.

연연한 태도는 화간접무요.

기타 양금이 능란하며 전일 보통학교에서 수년간 공부하였으므로 보통지식과 국어와 일본 잡가를 능통하여 칭찬하는 소리가 내지사람 입에도 끊이지 않고 호부한 귀객은 다투어 보기를 요구하며 어떤 연회석이든지 도홍이가 없으면 좌석이 무미하다.

그뿐 아니라 민활한 수단이 능란하여 사람을 대하여 언어를 통할 때는 고개를 기웃기웃 상글상글 하는 웃음은 철석이라도 능히 녹일만하더라.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1
▲ 도홍(桃紅)


• “살림하던 말씀이요?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시오. 이전에 살림이라고 해보았습니다만 술 한잔만 먹어도 꾸중이요, 소리 한마디만 하여도 책망이요, 근처 집에만 가도 강짜 부리던 생각하면 이에서 신물이 돋아요 하하하.”

 

이것은 모두 농담이거니와 당초에 기생에 투신하여 일부종사 못한 것은 지금까지 유감이나 기왕 화류계에 출신한 이상 어디까지든지 가기를 이용하여 무한히 놀다가 기미도 상합하고 나(필자)와 같은 하이칼라상을 얻어 태평성세에 무궁한 낙(樂)을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극력 주선하여 주심을 태산같이 바랍니다.

【매일신보 1914.03.25】

– 기생서재(妓生書齋):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 포구락(抛毬樂): 편을 갈라 공을 던지며 추는 놀이춤
– 역금: 엮음수심가(篇愁心歌). 짧은 사설을 느리고 자유로운 속도로 부르는 수심가에 비하여, 긴 사설을 빠르고 일정한 박(拍)으로 이야기하듯이 엮어서 부르기 때문에 ‘엮음수심가’라고 한다.
– 연연한(娟娟한): 아름답고 어여쁜
– 화간접무(花間蝶舞): 나비가 꽃 사이를 춤추며 날아다님
– 보통학교(普通學校): 일제시대 조선인들에게 초등 교육을 하던 학교
– 내지사람: 내지인(內地人). 외국이나 식민지에서 본국인을 이르는 말로 ‘일본인’을 뜻함
– 호부(豪富): 세력 있는 큰 부자
– 무미(無味): 재미가 없음
– 민활(敏活): 날쌔고 활발한
– 상글상글: 눈과 입을 귀엽게 움직이며 소리 없이 정답게 웃는 모양
– 강짜: 부부 사이에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 지나치게 시기함. 질투
– 일부종사(一夫從事): 한 남편만을 섬김
– 기미상합(氣味相合): 생각하는 바나 취미가 서로 맞는
– 가기(佳器): 좋은 그릇. 훌륭한 인재
– 하이칼라상(はいからさん): high collar. 서양식 유행을 따르던 멋쟁이를 이르던 말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화류병 광고에 출연한 도홍(桃紅)

 

이 시기 기생들은 천한 존재로 인식되면서도 그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패션과 미를 선도하는 모던걸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인기 있는 기생들은 광고의 모델로 활약하기도 했다.

 

도홍은 1914년 매일신보에 실린 ‘도락구상회’라는 약방(약국)의 전후 비교식(Before & After) 광고에 등장했는데, 그녀는 ‘화류병에 걸리기 전 미녀‘의 모습을 담당했다. (관련 글: 약국 간판으로 본 화류병의 시대)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3
▲ 도락구상회 남대문정차장(현재 서울역)지점 광고의 ‘도홍(오른쪽)’


당시 화류계는 그 이름을 따온 것처럼 화류병의 온상지로 여겨지고 있었다.

 

광고 속에서 그녀의 이름이 드러나거나 기생이라는 직업은 밝히지 않았으나 당대의 이름 높은 기생이었던 만큼 화류계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도홍은 혹여나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화류병 치료제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스스로 허락했을까. 아마도 업체에서 임의로 그녀의 사진을 사용한 것이 유력하다.

– 참고문헌:
• 每日申報. 藝壇一百人(四五).도홍 (19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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