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8일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72] 난홍(蘭紅, 기생)

부벽루 높은 난간에 비치여 오르는 둥근달은, 난홍의 안색과 방불하고,
대야동두에 멀리 보이는 저 청산은, 난홍의 경중아미와 방불하고,

춘풍에 드리워 오줄거리는 능라도 가는 버들은, 난홍의 몸 태도가 분명하니,
금수강산의 모든 풍채를 다 모아 일개 동기의 신체에 실어놓았구나.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1
▲ 난홍(蘭紅)


난홍의 나이는 지금 15세라.

남빛 치마를 입고 예기학교에 다니면서 칠현금을 비껴 안고, 미숙한 가곡을 배우느라고 비성을 쓰던지가 불과 3~4년 전 일이지만은 벌써 가곡, 시조와 심지어 잡가까지라도 다 명창이라는 칭찬을 듣고 오졸오졸 추는 춤도 썩 잔양스러워졌도다.

 

연연한 태도에 웃음을 띄어있는 것이 귀염성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여 남의 눈에는 아름다운 꽃송이가 피어 보이는 도다.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3
▲ 평양 부벽루와 능라도(1921년)


자고로 평양은 기생으로 이름이 있는 곳이라.

저러한 꽃을 탐하여 외지로부터 이 강산에 발 들여놓는 자들도 몇 천 몇백 명인데 그즈음 난홍의 장래는 어떻게 될는지.

생어사장어사하였으니, 종래 평양을 버리지 않고 길이 대동강산 풍월을 희롱하겠느냐.
일찍이 금부 옥랑의 백년가약을 따라 춘풍오호에 배를 타고 평안하신 님을 (찾아)가겠느냐.
(‘나고자란 평양에서 계속 기생 노릇을 할까, 아니면 결혼해서 화류계를 완전히 떠나 사라질까’라는 의미)


장래의 팔자는 미리 말할 수 없으리로다.

【매일신보 1914.05.03】

– 부벽루(浮碧樓): 평양 금수산 모란봉 동쪽 청류벽 위에 서 있는 정자
– 방불(彷彿): 거의 비슷함
– 대야동두(大野東頭): 넓은 들 동쪽 끝
– 청산(靑山): 풀과 나무가 무성한 푸른 산
– 경중아미(鏡中蛾眉): 거울 속의 눈썹
– 춘풍(春風): 봄바람
– 오줄거리는: 바람에 물건이 가볍고 보드랍게 잇따라 흔들리는 모양
– 능라도(綾羅島): 평양시 대동강에 있는 섬
– 버들: 버드나무의 준말
– 동기(童妓): 아직 머리를 얹지 않은 어린 기생
– 예기(藝妓): 노래, 춤, 그림, 글씨, 시문 따위의 예능을 익혀 손님을 접대하는 기생
– 비성(鼻聲): 비음을 창법적으로 내는 소리. 판소리에선 기피해야 할 발성
– 오졸오졸: 몸이 작은 사람이 가볍게 율동적으로 자꾸 움직이는 모양
– 잔양스러운: 행동이 가볍고 귀여운
– 연연한(娟娟한): 아름답고 어여쁜
– 생어사장어사(生於斯長於斯): 여기서 나서 자람
– 종래(從來): [부사] 끝내
– 금부(禁府): 의금부(義禁府)의 약칭. 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맡아하던 관아
– 옥랑(玉郞): 옥랑자전(玉娘子傳)에 나오는 열녀. 누명을 쓴 남편을 대신해 옥살이를 함
– 백년가약(百年佳約): 부부가 되어 평생을 같이 지낼 것을 굳게 다짐하는 아름다운 언약
– 춘풍오호(春風五湖): 춘추시대 말기, 월나라 범려(范蠡)가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조각배를 타고 오호로 떠나 이름을 바꾸고 숨어버렸다는 데서 흔히 ‘은둔하는 곳’의 대명사로 쓰인다. 본문에서도 ‘남편을 만나 기생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까’라는 의미로 쓰였다.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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